"불안심리는 전염병…유동성 수혈로"

"불안심리는 전염병…유동성 수혈로"

대담=정희경 금융부장· 정리=임동욱·사진=김병관 기자
2007.08.20 09:12

[머투초대석]이동걸 금융연구원장, '서브프라임' 사태 진단

이동걸 신임 금융연구원장은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글로벌 신용경색 사태와 관련해 심리적 불안감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기관의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더라도 위험이 전염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재할인율을 전격적으로 인하하기 하루 전인 16일 만난 그는 우리 당국이 간접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대한 우려로 최근 금융시장 여건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

▶금융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기실현적 예언'입니다. 곧 멀쩡해도 "망한다, 망한다" 하면 정말 망하고, 망할 것같아도 주변에서 "괜찮다"고 하면 안 망하는 것이 바로 금융입니다. 이번 사태의 경우 부실 자체의 크기보다 신뢰가 깨진 게 문제로 보입니다. 파생금융상품과 그로 인한 파장을 얼마나 잘 억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같습니다. 현 시점에서 지레 겁을 먹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영향만 주게 될 것입니다.

―파생상품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채널로 구성돼 규모 파악이 잘 안되는 것 아닌가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의 크기와 소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주택담보증권이 그 자체로만 매매가 된다면 손쉽게 부실률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펀드와 섞여 있을 때 전체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생겨납니다. 나아가 유동성 때문에 도산한다면 부실 자체가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당국이 유동성을 적절히 공급한다면 유동성 리스크가 사라지고 부실 자체만 남게 됩니다. 이때문에 유동성의 적절한 공급이 필요합니다. 위험 확산의 여지는 있지만 어떻게 이를 최소화하느냐는 정책당국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냥 예의주시하고 있으면 될까요.

▶국내의 경우 직접적인 손실은 충분히 흡수 가능합니다. 직접적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전제 하에 간접적·심리적 영향을 막을 수 있느냐는 당국의 유동성 공급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여기에 안이하게 대응해서는 안됩니다.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가능성도 위협적입니다만.

▶사실 '쇼킹'한 사건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엔캐리트레이드의 본질은 이자율 차이인데,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우리의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일본에서 돈을 들여온 사람들이 돈을 한번에 빼갈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는 예단하기 어렵고 결국 개별 플레이어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래도 지지선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최근 사태가 과거 신용카드 거품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 확산될 수 있습니다. 투자가 여러 곳으로 연결된다면 위험은 확대될 수 있다는 겁니다. 부실의 크기가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 해결의 핵심인데 그것은 아무리 조치해도 없어지지 않고 결국 흡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적으로 보면) 신용카드 사태의 부실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당시 90조원에 달하는 카드채 쇼크가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다만 서브프라임의 경우 부실의 크기가 작지만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부담입니다.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은행과 보험업계의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금융산업에서 '빅뱅'이 일어날까요.

▶변화는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빅뱅'은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부 증권사가 흥분해서 얘기하는 만큼 증권산업, 자본시장, 투자은행(IB) 업무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20년 정도 길게 봐야할 것같습니다.

자통법 '빅뱅'보다 점진적 변화에 더 무게

덩치보다 내실부터 갖춘 후 세계시장 도전을

―금융기관들이 IB업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IB는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것이 많습니다. 자통법을 통해 "자본을 확충하자, 키우자" 하는데 국제 경쟁력을 갖춘 IB시장에서 자본규모는 필수요소 중 하나밖에 안됩니다. 메이저플레이어로 성장하려면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자본이 많다고 해도 시장에서 상대를 해 줘야할 것 아닙니까. 실력도 있어야 하고 영업을 뒷받침해줄 백오피스도 갖춰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 자본규모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자본규모를 키웠다고 수익성도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주안점을 둬야 합니까.

▶국내 금융기관들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국내에 눈을 돌리라는 겁니다. 저는 그동안 식상할 정도로 "한국판 골드만삭스 하기 전에 실버만삭스 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메이저가 되기 전에 국내에서 소외된 곳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IB 경험을 축적하자는 겁니다. 중소기업들이 직접금융시장의 혜택을 받도록 해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증권사 IB화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둘째, IB업무를 놓고 은행과 증권사가 서로 유리하다고 주장하는데 IB를 위해서는 막대한 정보력이 필요합니다. 이점에서 절대적으로 은행이 우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이 연관된 IB가 우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금융기관들이 너무 성급하다는 것인가요.

▶금융기관이 성급한 것이 아니고 증권업계가 과도하게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심이 높아지고 가치도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 것 아닐까요. 반면 트렌드에서 소외된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초초해 할 수 있습니다.

―(금융)연구원이 너무 은행편만 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그 지적은 대단히 부당합니다. 제가 급진적이고 (시장)개입적이며, 굉장히 재벌을 미워하고 증오심에 머리에 뿔이 나 있다는 소문을 들으셨을 겁니다. (웃음) 하지만 제가 주장해온 것은 영미식 제도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에 반하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제 이미지에) 색칠을 하는 것같아 아쉽습니다. 자통법에 대해 크게 2가지를 비판했습니다. 자산운용업과 증권업을 붙이는 것은 이해상충의 우려가 있고, 증권업에 지급결제권을 직접 주는 것은 안정성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급결제의 경우 미국처럼 증권사들이 은행을 자회사로 두고 하면 됩니다.

―'금산분리'에 대한 입장에 변함이 없으신지요.

▶솔직히 대한민국처럼 금산분리가 안돼 있는 곳도 별로 없습니다. 제2금융권을 놓고 볼 때 전부 산업자본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은행에 대한 4%룰을 놓고 "한국처럼 규제가 많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감정적인 논쟁입니다. 증권·보험업에 규제가 없는 만큼 (재벌이) 우선 이 분야에서 세계적 금융기관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세계적 증권·보험사를 만든 뒤 은행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면 말이 됩니다. 왜 은행업에만 들어오려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실력으로 뭔가 보일 각오가 돼 있다면 좀 더 합리적인 논쟁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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