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재 기업에너지구매자연합(CEBA)의 연례 보고서..대기업들의 청정에너지 구매 급증 추세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친화석연료 정책 기조로 미국의 기후변화 정책 후퇴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정작 미국 현지 기업들의 청정에너지 조달 규모는 올해 사상 최대를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과 상대적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증설할 수 있는 태양광이란 선택지가 맞물린 영향으로 보인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소재 기업에너지구매자연합(CEBA)이 발표한 '2026 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에서 기업 구매자들이 조달한 자발적 청정에너지 계약 물량은 13.4GW(기가와트)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계약 물량(27.5GW)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런 추세로 보면 미국 기업들의 올해 청정에너지 구매량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4년(24.3GW)과 2025년(27.5GW)에 연속으로 관련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CEBA는 "지난해 27GW가 넘는 발표용량이 집계된데 이어 이 흐름이 올 1분기에도 이어졌다"며 "청정에너지 조달이 기후 리더십을 넘어 기업 전략의 핵심이자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CEBA는 탄소 배출 없는 전력 시스템 확대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기업 에너지 구매자 단체다. 아마존과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러, 엔비디아·인텔 등 미국 기술기업, 월마트·타깃 등 소비재 기업, 토요타·혼다 등 다국적 에너지 수요기업들과 에너지 공급 기업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기업 주도 청정에너지 구매 '붐'을 견인하는 핵심 전원은 태양광이다. 지난해 미국 기업들이 체결한 청정에너지 계약 중 태양광은 19.4GW를 기록, 전체 계약 용량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CEBA는 "태양광이 여전히 선도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한 뒤 보고서 말미에 "청정에너지는 여전히 비용이 가장 저렴하고 가장 빠르게 배치할 수 있는 전력생산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청정에너지 조달 붐은 미국 전력시장에서 기업들의 위상을 끌어 올렸다. 실제로 CEBA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미국 기업들이 주도한 누적 청정에너지 계약 용량은 총 143.8GW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미국 전체 전력 발전량의 최소 4%를 차지한다. 과거 정부나 유틸리티(전력 공급사)가 주도하던 전력시장에 대규모 구매력을 갖춘 빅테크 중심의 '기업 집단'이 전력망의 판도를 바꾸는 주체로 올라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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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청정에너지 구매는 단순한 전력 조달을 넘어 프로젝트 개발과 금융 조달, 전력망 운영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CEBA는 기업 구매자들이 유틸리티와 직접 협력해 신규 발전 설비를 전력망에 연결하고, 기존 수력 등 청정에너지 자산의 수명을 연장하며, AI를 활용해 전력망 계획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구글의 최대 3GW 수력발전 설비 개선·재허가 프레임워크, 마이크로소프트와 미국 중부 전력망 운영기관(MISO)의 협력, 엔비디아의 남부 캘리포니아 전력망 관련 활동 등이 제시됐다. CEBA는 "기업 구매자들이 단순히 청정에너지 조달 흐름을 이어가는데 그치지 않고, 전력 시스템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미국 내 기업들의 청정에너지 구매 붐이 대형 구매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도 확인됐다. CEBA에 따르면 2025년 청정에너지 계약을 새로 발표한 기업 수는 전년보다 40% 줄어 2016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력구매계약(PPA) 가격 상승과 송전망 제약, 인허가 지연, 세제·무역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청정에너지 조달 문턱을 높인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해 북미 지역 평균 풍력 PPA 가격은 전년 대비 24%, 태양광 PPA 가격은 13% 각각 올랐다. CEBA는 "청정에너지 구매 기업들이 전례 없는 복잡함에 직면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앞으로 미칠 영향도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지난 1분기 청정에너지 계약 규모가 급증한데에는 세제 혜택이 사라지기 전 계약을 체결하려는 수요가 몰린 탓도 있어서다.
미국의 이른바 '원 빅 뷰티풀 빌(OBBBA)'에 따라 풍력·태양광 프로젝트가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오는 7월 4일까지 착공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2027년말까지 상업운전에 들어가야 한다. 미 매체 악시오스도 올해 기업 청정에너지 구매 확대의 배경으로 AI 전력 수요와 함께 '만료되는 세액공제 혜택 확보'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