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모가 산정 실패 누가 책임지나

[기자수첩]공모가 산정 실패 누가 책임지나

김지훈 기자
2026.04.10 05:30
한국거래소. /사진=뉴스1
한국거래소. /사진=뉴스1

"이런 표는 처음 봅니다." 정부의 자동차 정책 공론화 과정에 참여해 왔던 한 자동차업계 인사가 오는 10일 IPO(기업공개) 수요예측을 앞둔 채비라는 회사의 증권신고서를 보고 한 말이다. 증권신고서는 채비 측이 대기환경보전법상 보급 목표를 토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법에는 차량 판매대수가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채비 측은 여러가지 가정을 자체적으로 정해서 회사의 IPO 가치를 산정했다. 국내 전기차 신차 판매량이 2025년부터 매해 똑같이 유지된다는 자체 가정을 바탕으로 법에서 목표로하는 전기차 비율을 곱해 전기차 시장규모를 정한 것. 정부와 소통해 왔던 전문가조차 처음 보는 내용이 IPO 기업가치의 기준이 된 배경이다.

기자는 최근 채비 측이 전제로한 시나리오가 10%포인트만 빗나가면 채비가 2028년에 목표로 한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반토막난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채비는 보도 이틀 후부터 세 차례 정정을 거쳐 공모가 산정 기준인 2028년 추정 EBITDA를 10% 낮췄다. 2025년 실적이 예상만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지난해 실적 추산도 틀렸는데 2년 후 예측이 정확할지 의문이다. 어쨌든 채비는 할인율 밴드(범위)를 좁히는 등 방식으로 공모 희망가는 백원 단위도 바꾸지 않고 유지했다.

공모 희망가는 이렇듯 변수 조합에 따라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공모 희망가가 정당하냐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 76곳 중 연말 기준 공모가를 밑돈 기업이 26곳이었다. 게다가 지난해는 공모가가 희망 밴드를 넘어선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밴드 안에서 결정됐는데도 3분의 1이 공모가를 밑돌았다면 희망 밴드 자체가 높았다는 의미다. 세계 유튜브 1위 영상 '아기상어' 제작사인 핑크퐁은 지난해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 대비 거의 반토막이 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썩은 물건인지 제대로 된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섞여 있으면 그 가게에 가기 싫지 않나"라고 했다. 상장되는 기업의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이 적절한지 검증하는 게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이 해야할 일이다.

김지훈-증권부기자-캐리커쳐/그래픽=임종철
김지훈-증권부기자-캐리커쳐/그래픽=임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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