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퇴임식 없이 퇴임한 출연연 기관장

[우보세]퇴임식 없이 퇴임한 출연연 기관장

류준영 기자
2017.12.21 03:02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원장이 지난달 14일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2002년부터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개발을 이끈 그는 취임식 없이 취임했던 것처럼 퇴임식 없이 정든 원을 떠났다.

조 전 원장은 1990년 항우연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로켓을 개발하며 로켓 개발 한 길을 걸었다. 그는 태극마크가 새겨진 로켓 개발 역사에 산증인으로 통한다. 1단형 과학로켓(KSR-Ⅰ, 1993년 발사), 이보다 고도를 3배 높인 2단형 과학로켓(KSR-Ⅱ, 1998년) 개발 당시 조 전 원장은 전자파트 부문 책임자로 참여했다. 액체추진과학로켓(KSR-3) 개발 때는 사업 후반부 총책임자를 맡았다.

한국을 우주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킨 나로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업이 없을 정도다. 2021년 발사 예정인 첫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Ⅱ) 엔진도 그가 주도해 설계했다. 4000쪽이 넘는 KSLV-Ⅱ 개발 계획서는 그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 연구자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러시아와의 협상 난항과 2002년 나로호 개발 뒤 두 번의 발사 실패로 그는 심각한 공항장애를 앓았다. 신경 안정제를 매일 복용하며 버텼다고 한다. 그는 소탈함으로도 유명하다. 원장으로 임명된 뒤 취임식을 생략하고 임명장만 받은 뒤 곧바로 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업무를 시작했다. 원장에게 지급되는 고급 관용차도 마다한 채 평소 타던 승합차를 몰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해진 그와 15일 저녁 어느 허름한 중국집에서 만났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후회되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그러곤 한동안 입을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는 “아버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꼭 필요할 땐 곁에 없었다고 한 아들의 원망 섞인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고 말했다. 로켓 개발자로 살아온 20년 넘는 세월, 그의 주변 지인 말에 따르면 조 전 원장은 나로호 발사 전까지 단 두 번의 휴가를 냈을 뿐이다.

우주를 향해 긴 흰색 꼬리를 상공에 그리며 날아오른 나로호의 짧은 9분, 그 개발 과정의 뒷이야기는 밤을 새도 다 풀지 못할 정도로 길고 무수했다. 로켓 개발을 향한 그의 집념과 끈기, 그리고 희생은 과학자들 선봉에 선 기관장 직위가 권력을 휘두르는 달콤한 자리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직할기관에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이 윗선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물갈이설’ 등으로 연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출연연 기관장 에 정부 관료 출신 혹은 정치적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관행이 또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전문가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출연연 수장에 앉을 경우 그 조직은 한순간 오합지졸이 될 수 있다. 걱정이 앞선다. 조 전 원장의 퇴임이 아쉽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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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영 기자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미래사업부) 차장 ·한국과학기자협회 이사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석사 졸업 ·한양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자상 ·(저서)4차 산업혁명과 빅뱅 파괴의 시대(공저, 한스미디어) ■전문분야 -벤처·스타트업 사업모델 및 경영·홍보 컨설팅 -기술 창업(후속 R&D 분야) 자문 -과학기술 R&D 정책 분야 컨설팅 -과학 크리에이터를 위한 글쓰기 강연 -에너지 전환,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자문 -AI시대 기술경영 및 혁신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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