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원장이 지난달 14일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2002년부터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개발을 이끈 그는 취임식 없이 취임했던 것처럼 퇴임식 없이 정든 원을 떠났다.
조 전 원장은 1990년 항우연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로켓을 개발하며 로켓 개발 한 길을 걸었다. 그는 태극마크가 새겨진 로켓 개발 역사에 산증인으로 통한다. 1단형 과학로켓(KSR-Ⅰ, 1993년 발사), 이보다 고도를 3배 높인 2단형 과학로켓(KSR-Ⅱ, 1998년) 개발 당시 조 전 원장은 전자파트 부문 책임자로 참여했다. 액체추진과학로켓(KSR-3) 개발 때는 사업 후반부 총책임자를 맡았다.
한국을 우주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킨 나로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업이 없을 정도다. 2021년 발사 예정인 첫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Ⅱ) 엔진도 그가 주도해 설계했다. 4000쪽이 넘는 KSLV-Ⅱ 개발 계획서는 그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 연구자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러시아와의 협상 난항과 2002년 나로호 개발 뒤 두 번의 발사 실패로 그는 심각한 공항장애를 앓았다. 신경 안정제를 매일 복용하며 버텼다고 한다. 그는 소탈함으로도 유명하다. 원장으로 임명된 뒤 취임식을 생략하고 임명장만 받은 뒤 곧바로 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업무를 시작했다. 원장에게 지급되는 고급 관용차도 마다한 채 평소 타던 승합차를 몰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해진 그와 15일 저녁 어느 허름한 중국집에서 만났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후회되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그러곤 한동안 입을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는 “아버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꼭 필요할 땐 곁에 없었다고 한 아들의 원망 섞인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고 말했다. 로켓 개발자로 살아온 20년 넘는 세월, 그의 주변 지인 말에 따르면 조 전 원장은 나로호 발사 전까지 단 두 번의 휴가를 냈을 뿐이다.

우주를 향해 긴 흰색 꼬리를 상공에 그리며 날아오른 나로호의 짧은 9분, 그 개발 과정의 뒷이야기는 밤을 새도 다 풀지 못할 정도로 길고 무수했다. 로켓 개발을 향한 그의 집념과 끈기, 그리고 희생은 과학자들 선봉에 선 기관장 직위가 권력을 휘두르는 달콤한 자리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직할기관에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이 윗선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물갈이설’ 등으로 연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출연연 기관장 에 정부 관료 출신 혹은 정치적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관행이 또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전문가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출연연 수장에 앉을 경우 그 조직은 한순간 오합지졸이 될 수 있다. 걱정이 앞선다. 조 전 원장의 퇴임이 아쉽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