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에 대한 형사 기소를 제한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데 대해 의사들 사이에서 "환영한다"면서도 "의료진 개인의 과실이 아닌,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던 시스템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의료사고의 원인 80%가 시스템의 문제, 20%가 의료진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한다고 분석한 데 따른 것이다.
19일 의료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 A스페이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국회를 향해 "환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해당 개정안의 추가 수정을 촉구한다"며 "안전한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성명을 냈다.
강희경 의료공동행동 공동대표(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의료분쟁의 대상이 되는 환자안전사건(의료사고)를 감정하고 심의할 때 의료진 개개인의 과실 여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미비한 시스템'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의료공동행동은 △고의적인 해악인지 △의료진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건강상태였는지 △현장에서 적용되는 프로토콜이나 절차를 명시적으로 위반했는지 △비슷한 정도의 자격·경험을 갖춘 다른 의료진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과실인지 △정상을 참작할 만한 다른 환경조건(재난 등)이 있는지를 순차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대표는 "(앞서 언급한 항목에) 모두 해당하지 않은 경우에만 의료진 개인의 과실로 판단해야 한다"며 "그 외 경우라면 개인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해당 사건을 조장한 시스템을 개선해 향후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은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의료 공급 체계의 왜곡'을 해소하고 '의료인이 안심하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게 취지다. 하지만 개정안 제2조의2에 규정된 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료행위의 정의가 '과실의 의도나 위중함'을 기준으로 하는 대신 과실의 '결과'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과실을 중과실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이들은 문제 삼았다.

이날 어은경 순천향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진 개인의 중과실 여부는 '비슷한 경험과 진문성을 가진 다른 의료진이라면 절대 저지르지 않을 과실'인지가 기준이어야 한다"며 "의료행위의 과실을 판단하려면 △불가항력적 위험의 상존 △긴급성 △난이도 같은 특수성이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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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교수는 "환자안전사건의 원인을 찾으려면 환자가 병원에 오기 전 단계의 정보도 수집돼야 한다"며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기관의 범주에 '환자 이송 기관과 의약품, 의료기기, 치료제의 생산·수입·판매 기관 등'도 포함할 것을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을 통해 제도 보완을 추진하고 있다.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전날(18일)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의사협회가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한 '의료 민·형사소송 현황 비교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에서 "의료사고는 의료인과 환자 양측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으로 중과실 범위를 두고도 입장이 크게 갈린다"며 "최근 5년간 판례를 분석해 중대한 과실을 12개 유형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의료사고 이후 설명과 사과를 활성화하기 위한 장치도 도입한다. 신 과장은 "사고 원인과 경과를 설명하고 유감을 표현한 내용은 향후 민형사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의료진이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사고 이후 소통 부족"이라고 강조했다.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수사·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사고심의위원회도 설치한다. 신 과장은 "중과실 여부와 필수의료 해당 여부 등을 전문적으로 신속하게 판단해 수사기관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소 제한 특례도 핵심 제도다. 그는 "필수의료 행위 중 경과실 사고이고 손해배상이 완료된 경우 사망사고까지 포함해 기소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취지"라며 "의료진의 형사 부담을 줄이면서도 환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