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60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희대의 살인마 '조디악 킬러'. 그는 37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연쇄살인범이자 현재까지도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미궁 속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특이한 방식으로 경찰과 언론에 알렸다. 범행 증거인 피비린내 나는 옷가지, 편지 그리고 암호문을 보냈다.
지난 2020년 12월 5일(현지시간) 조디악의 암호문 4개 중 하나가 해독됐다. 미국·벨기에·호주 출신의 아마추어 탐정들이 51년 만에 비밀을 밝힌 셈이다.
암호를 풀었다는 기쁨도 잠시, 반세기 만에 드러난 진실은 조디악 킬러의 정체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긴커녕 허무맹랑했다.

조디악은 1969년 8월1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지역신문사 세 곳에 편지 한 통씩을 보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자신이 1968년 12월 발생한 허먼 로드 호수 살인 사건과 한 달 전 일어난 블루락 골프장 총격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소개했다. 편지에는 영어 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혀 있었는데, 조디악은 암호를 해독하면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지를 신문에 싣길 요구했다. 언론사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으면 주말 밤마다 12명의 사람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덧붙였다. 이에 신문사들은 신문 1면에 조디악의 암호화 편지를 실었다.
일주일 후 캘리포니아의 한 교사 부부가 신문에 실린 조디악의 암호를 푸는 데 성공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난 사람 죽이는 게 좋다. 왜냐면 아주 재밌으니까. 숲에서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것보다 더 재밌다.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니까. 무언가를 죽이는 것은 내게 가장 짜릿한 경험을 준다. 여자랑 관계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죽을 때 나는 낙원에서 다시 태어나고 내가 죽인 것들은 내 노예가 된다는 거다. (이하 생략)"
첫 편지 이후 엿새 만에 보낸 또 다른 편지에는 '조디악 가라사대(This is Zodiac speaking)'라는 표현을 썼다. 신원 미상의 범죄자가 '조디악 킬러'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그는 1974년까지 언론사에 해당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와 암호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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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조디악은 살인을 저질렀다. 1969년 9월27일 나파 카운티의 베레사 호수에서 데이트하던 커플이 공격받아 남성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특이하게도 나파 카운티 사건에 앞서 발생한 블루락 골프장 총격 살인의 경우에도 남성만 생존했다.
그다음 달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 기사가 권총을 맞아 숨졌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망한 택시 기사의 피 묻은 셔츠를 일부 갖고 갔는데, 샌프란시스코의 한 지역신문사가 조디악으로부터 셔츠 조각과 편지를 받으면서 해당 사건도 그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경찰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조디악의 살인은 총 5건이다. 그러나 조디악은 자신이 37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며 경찰 또한 추가 범죄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공식적인 첫 살인을 저지른 지 약 5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조디악 킬러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키 180㎝, 몸무게 77㎏ 이상 백인 남성" 목격자들의 진술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중 2007년 영화 '조디악'과 올해 개봉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디악이다'에서는 유력한 용의자로 모두 한 남성을 지목하고 있다.
바로 전직 교사 '아서 리 앨랜(Arthur Leigh Allen)'. 그는 지난 1992년 58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1971년 7월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수년 전 앨 랜이 조디악이라는 이름으로 살인 계획을 말한 적 있다는 앨랜 지인의 제보를 받았다. 그는 이미 1969년 블루락 골프장 총격 사건에 대해 해당 지역 경찰에서 조사받은 전적이 있었다.
또 앨랜의 동생 부부는 조디악 편지 사본을 보고 단어 '크리스마스(Christmass)'를 쓸 때 's'를 두 번 쓰는 것이 앨랜의 습관과 같다고 했다. 조디악 시계를 착용하고 있던 점, 거주하던 트레일러에서 피 묻은 칼과 총기가 발견된 점 등 수상한 것투성이였다.
그러나 아서 리 앨랜의 필체는 조디악이 남긴 편지 속 글씨와 달랐다. 체포되지 않은 결정적 이유였다.
심증뿐이지만 아서 리 앨랜이 의심스러운 이유는 또 있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약 3년간 조디악의 편지가 끊겼고 앨랜이 1975년 아동성추행으로 수감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1992년에는 블루락 골프장 총격 사건의 생존자가 앨랜의 사진을 보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기소를 위한 심리를 열기 직전 앨랜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서 리 앨랜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2021년 미해결 사건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미국의 민간단체가 2018년 세상을 떠난 게리 프란시스 포스트라는 남성이 조디악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지역 경찰은 단체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보다 앞선 2014년에는 책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 생부 그리고 조디악 킬러 찾기'의 저자 게리 스튜어트가 자신의 생부 얼 반 베스트 주니어가 조디악 킬러라고 말했다. 특히 베스트 주니어는 경찰이 제작한 조디악의 몽타주와 생김새가 매우 비슷했던 것으로 화제가 됐다.

2020년 12월5일 추가로 해독된 암호문은 1969년 11월 조디악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보낸 것으로, 영어 대문자와 몇 가지 상형문자 같은 기호 340개로 이루어져 '340 암호'라고 불렸다.
미국 웹디자이너 데이비드 오란차크, 호주 응용수학자 샘 블레이크, 벨기에 창고 관리인 겸 암호해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잘 반 에이크로 구성된 해독팀이 51년 만에 비밀을 푼 주역들이다. 오란차크는 조디악 암호를 1950년대 미군이 사용하던 암호화 설명서에 근거해 해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독된 암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를 잡으려고 애쓰면서 즐겁게 지내기를 바란다" "나는 파라다이스로 갈 것이기 때문에 가스실에 들어가는 게 두렵지 않다"
조디악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긴커녕 허세 가득한 조롱이 가득했다. 반세기 만에 또 한 번 우리를 조롱한 것과 다름없다.
과거 조디악은 경찰에 점수를 매기는 등 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비웃는 태도를 보였다.
1978년 4월24일 보낸 편지에는 "나에 대한 영화가 나오길 기대한다. 누가 내 역을 맡을까? 모든 것은 내 통제하에 있다"라고 적었다. 실제 2007년에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조디악'이 개봉했다. 조디악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다수 발매됐다.
미국을 혼란에 빠지게 한 조디악 킬러. 조디악 킬러의 명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지금도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