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인격농단] ② 서울시향 작곡가와 비서 백씨의 ‘카톡’ 대화내용…비서의 '기획', 작곡가의 '코치’

서울중앙지검이 확보한 USB의 서울시향 직원들의 ‘단톡’(단체 카톡)방과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비서 백모씨의 ‘카톡’ 대화 내용은 2014년 2월 3일부터 2015년 11월 23일까지 21개월에 걸쳐 A4 용지로 200여 페이지에 이른다.
이 대화 내용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서로 공모하고, 지시를 전달받고, 구체적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는 지난 2014년 12월 2일 시향 직원 17명이 언론에 호소문을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내용은 2013년 2월 1일 취임한 박 전 대표가 직원에게 일상적인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으로 인권을 유린했다는 게 골자다.
이후 1년여에 걸친 경찰 수사에서 박 전 대표는 ‘혐의없음’ 결론으로 무죄를 입증했고, 사건은 검찰로 송치돼 현재 수사 중이다.
USB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비서 백씨의 기획→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씨의 코치→직원들의 공모 및 조작(12일자 기사 : ‘단톡방’에 드러난 서울시향 농단 “과장·거짓말로 대표 잘라야”) 등으로 요약된다.
비서 백모씨와 작곡가 진씨의 기획과 조언…“서울시에 사장 나가도록 다그칠 것”
2014년 2월 3일부터 호소문이 배포된 12월 2일까지 비서 백씨의 ‘카톡’ 대화 내용은 주로 진 작곡가에게 맞춰져 있다. 대화는 콘서트 일정 등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박 전 대표의 조직 운영과 행동에 대한 부정적 묘사를 거쳐 ‘몰아내기’ 위한 합을 맞추는 과정으로 치닫는다.
2월 14일 오전 8시 18분 진씨는 “이제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면 안 되겠어. 사장님 지나치게 공포감을 유발시킨다는…”이라고 적자, 백씨는 “정말 사장님이 이런 논리를 펼치시니 조직을 위험하게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상황인거죠”라고 답했다.
대화들은 주로 가끔 연주 일정 및 섭외 건으로 이뤄졌지만,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박 전 대표의 원칙론에 막히거나 박 전 대표와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을 ‘만행’으로 비유하며 한목소리를 낸다. 진씨는 9월 21일 오전 10시 1분 “어쨌든 이번에 큰 문제가 해결되면 새로운 시작을 하되, 그간 내재된 문제들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할 것 같아”라며 “정샘(정명훈 전 감독)께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 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공격당할 수 있는 건수는 안 만드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 같아”라고 주문한다.
백씨는 이에 “‘수장으로 조직을 보호하지 않고 외부의 무조건적인 공격을 본인의 개인적 감정이 따른 보복논리로 활용’ 이런 거 써놓아야겠어요. 그리고 직원들 인권유린으로 정샘이 사전에 대표에게 독대해서 인격적 대우 요청했다는 내용도 넣을께요.”라고 받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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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는 이 대목에서 인사에도 슬쩍 관여한다. 공연 기획팀 조정이 꼭 필요하다면서 비서 백씨가 팀장을 맡아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도 놓치지 않는다. 진씨는 “내 관할이 아니지만 내 일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하는 얘기”라면서 “새로운 사장이 오기 전에 인사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 놓으면 어떨까”하고 제안한다. 진씨는 9월 25일 오후 7시 26분 “같이 힘을 합쳐서 몰아내면 되겠다”고 말했다.
백씨는 10월 22일 오전 8시 48분 서울시 관계자 A씨에게 전달할 내용을 진씨에게 확정받는 문자를 보낸다. “시장님 쪽에서 사장 접촉. 방식은 쇼크(당신은 나쁜 사람이다. 마에스트로와 진 선생님도 당신과 공존 힘들다)+유화(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그림과 상황을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다). 조용한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직원들이 인권위원회 진정에서부터 시작해 공론화할 것이다.”
진씨는 10월 29일 오후 8시 55분 “절대 안심하지 말고 서울시에 사장에게 언제 나갈거냐고 다그치라 하도록. 그만두고 나서 밖에서 해코지할 경우 탄원서 내용 오픈하겠다는 걸 또 한번 강조하도록”하고 지시를 내린다. 백씨는 “네. 내일 그렇게 이야기할게요!”라고 지시에 따른다.
진씨의 주도면밀한 분석과 대응…사장 퇴출 시나리오에서 반박 방법까지 구체적 ‘지시’
진씨는 10월 30일 오후 9시 43분부터 주도면밀한 분석과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코치’한다. 진씨는 ‘현재 상황이 위험한 이유’란 제목의 대화에서 “1. 시에다 이 사람이 그럴듯하게 정샘과 시향 직원들에 대해 안 좋게 얘기했고, 많은 부분이 먹혀들어갔을 것이라 추측해. 2. 이 사람이 친절하게 나가면서 유야무야되고 남아있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음. 너희들의 심리조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용서’의 분위기로 갈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서울시 쪽에 압력(pressure)의 끈을 놓으면 절대 안돼. 사장이 험담해서 시향에 대한 반대 여론이 조성되면 사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음. 이 상황은 우리 모두 피하고 싶다고 전해.”라고 적었다.
진씨는 11월 10일 오전 10시 22분 △사장퇴출 △정샘계약 △서울시 설득 순으로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말한 뒤 “사장을 인권유린 등으로 내보내야 하기는 하지만, 비즈니스에선 이 사람 말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서울시를 적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라”(11~12일)고 주의를 내렸다.
백씨는 11월 29일 오전 9시 2분 진씨의 ‘코치’에 “선생님 안 계셨으면 저희 정말 많은 부분 의견 안 모아지고 갈팡질팡했을 거예요. 너무 감사드려요!!”라며 “00일보가 미리 자료 보고 있고 12월 2일 새벽에 보도자료로 뿌릴 거예요”라고 말했다.
백씨는 12월 1일 “직원 30명 중 지난번 10명에다 익명 보장하고 쪽수 늘리기 위해 7명 보강됐다”고 보고했다.
진씨는 호소문이 발표된 12월 2일 “판이 뒤집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무슨 말을 하든 철저히 반박해. 사장이 무슨 숫자나 도표 만들어서 보여주더라도 다 가짜라고 반박하도록. 지금부터 더 강조를 높여 가야 돼.”라며 “웅변대회에서도 나중에 하는 사람이 이기니까 절대로 사장에게 마지막 발언권을 주지 말고. 항상 논쟁이 우리 쪽의 반박으로 끝나도록.”이라고 강조했다.
'대표 몰아내기' 서울시향 직원들 "'단톡방' 만들어도 내용 기억 안나"
2014년 12월 4일. 박현정 전 대표의 기자회견에 앞서 서울시향 직원들은 '단톡방'을 만들어 '박 대표 몰아내기'를 위한 공모 및 조작 대화에 나섰다. 이들은 "지금은 과장, 거짓말 양념. 무조건 이기도록 만들어야", "조사과에는 좀 '개뻥'쳐도 돼" 같은 선동의 언어들을 내뱉었다.
기자가 13일 비서 백씨와 서울시향 ‘단톡방’에 참여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단톡방에 참여한 건 맞지만,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직원 중 한 명은 통화에서 "'카톡' 내용이 마치 조직적 모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호소문을 발표한 후 마음 둘 곳 없는 직원들이 모여 만든 대화 창구일 뿐"이라며 "조직적 모의라면 호소문 이전부터 그런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이미 진 작곡가와 비서 백씨의 '카톡' 내용이 이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박 전 대표 몰아내기'를 위해 기획하고 코치하는 '협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공모는 이미 두 달 전부터 시작된 셈이다.
특히 예술과 행정이 분리된 사안에서 진 작곡가가 예술의 영역을 넘어 인사 문제부터 대표를 향한 공격의 수위와 순서까지 정리하는 모양새는 조직적 공모의 증거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진 작곡가는 '카톡'에 나온 휴대폰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정명훈 감독과 진 작곡가와의 연락은 비서 백모씨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백씨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명훈 전 예술감독과 박현정 전 대표 관련 서울시향 사태 일지>
▲2013년 2월1일=박현정 전 대표 서울시향 부임.
▲2014년 12월2일=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 박 전대표가 폭언과 성추행, 인사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호소문을 내고 퇴진 요구.
▲12월5일=박 전대표, 기자회견을 열어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직원들이 낸 호소문의 배후라는 의혹 제기와 함께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
▲12월10일=정 전예술감독, 서울시향 단원들로부터 박 전대표에 대한 의혹을 1년 전에 들었다면서 '인권침해'라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
▲12월23일=서울시향 직원 10명, 박 전대표를 강제추행과 성희롱 등의 혐의로 고소.
▲12월29일=박 전대표 기자회견 후 대표 사퇴.
▲12월31일=서울시향 이사회, 정 전예술감독과 1년 계약연장 결정.
▲2015년 3~6월=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서울시향 대상 수사 진행.
▲7월1일=최흥식 신임 대표이사 취임.
▲8월11일=서울시향 직원의 박 전대표 고발건, 경찰 무혐의 의견 송치. 증거 불충분 이유.(박 전대표 고소한 서울시향 직원 10명 명예훼손 피의자 전환)
▲12월27~29일=박 전대표의 소속직원 성추행 의혹 배후에 정 전예술감독의 부인 구모씨가 관여한 의혹 제기. 정 전예술감독, 예술감독직 사퇴의사 밝힘.
▲12월30일=예술의전당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로 10년 만에 서울시향을 떠남.
▲2016년 3월3일=서울지방경찰청 조사결과 발표. 서울시향 직원 10명 불구속 의견으로 검찰 송치. 정 전예술감독 부인 구모씨는 기소중지 의견 검찰 송치.
▲3월9일=박 전대표, 정명훈 전예술감독 상대 명예훼손 관련 손해배상 민사소송 제기.
▲3월28일=정 전예술감독, 박현정 전대표를 상대로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맞고소.
▲6~7월=박 전대표, 정 전예술감독 등 조사.
▲~2017년 현재=서울중앙지검 조사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