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코노미]<중편>한국의 딜레마: 규제와 인프라의 전쟁①

매년 급증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도 달성해야 한다.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무탄소 전원으로의 혁신이 불가피한 이유다.
문제는 공급망이다. 급증하는 전력을 감당할 인프라 확충과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시장 개편이 시급하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력망 건설은 님비(NIMBY)에 막혔고 전력시장 개편은 민영화 논란에 갇혔다. 목표와 현실이 충돌하는 '전력산업의 딜레마'다.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식탐은 예고된 미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2년 460TWh(테라와트시)에서 2026년 1050TWh로 급증할 전망이다. 불과 4년만에 2배 이상 뛴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1년 전력수요(568TWh)의 2배이자 일본(940TWh)과 맞먹는 규모다.
AI 학습과 추론 과정에 필요한 복잡한 수학적 연산 탓이다. 고도화된 반복 연산은 전력을 대량 소모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도 막대한 전기가 들어간다. 그야말로 '전기 먹는 괴물'이다.
한국도 AI 대전(大戰)에 뛰어들었다. 엔비디아로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확보했고 곳곳에서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투자는 공격적이다.
하지만 전력 인프라는 걸음마 단계다. 당장 전력망이 부족하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데이터센터로 보낼 '길'이 좁고 낡았다. 현재 전력망으로는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인프라 개선을 위한 전력망 건설은 지역 이기주의에 막혔다. 대형 송전탑 건설은 재산권과 건강권 침해를 이유로 번번이 주민 반대에 직면한다. 공사 기간 초과는 상수가 됐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당초 계획보다 12년 6개월이나 지연됐다.
대안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형 공급 모델이 꼽힌다. 전기를 생산한 지역에서 바로 소비해 송전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다. 이 또한 전력시장 개편 없이는 공염불이다. 지방 대형 발전소에서 생산해 독점 시장에 일방적으로 뿌리는 방식은 화석연료 시대의 유물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급증했고 대부분 민간이다. 일부 지역에선 재생에너지가 남아돌아도 경직된 시장 구조 탓에 버려진다. 과잉 생산된 전력을 유통할 시스템이 없다.
한국의 전력시장은 2001년 한전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분할한 이후 2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송전·배전·판매는 여전히 한전 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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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망 민간 투자 허용이나 판매시장 자율화는 '민영화 괴담'에 발목이 잡힌다. 전기의 공공재적 성격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공익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효율을 높일 혁신안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SOFC)은 "화력발전 중심의 현 전력시장은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에 걸맞지 않는 낡은 패러다임"이라며 "에너지 신사업과 전력구매계약(PPA) 활성화를 위해 전력시장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