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로 돌아본 연상호 좀비의 진화

연상호 감독의 새 좀비 영화 ‘군체’가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조로운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좀비 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이자 ‘K-좀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세계에 알린 ‘부산행’이 개봉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관절을 꺾으며 질주하는 역동적인 한국형 좀비를 탄생시킨 연상호 감독은 네 번째 좀비 영화 ‘군체’에서 ‘집단 지성’을 가진 진화형 좀비를 선보인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는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10년간 이어온 연상호의 좀비 세계관 ‘연니버스’의 진화를 살펴본다.
개봉은 ‘부산행’이 한 달 앞섰지만, 연상호 감독의 좀비 세계관의 시작은 애니메이션 ‘서울역’이다. ‘부산행’의 프리퀄로,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발발한 날의 지옥도를 그린 작품이다. 서울역 지하도를 거점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노숙자, 가출 청소년, 부랑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좀비라는 위협적인 집단으로 내몰린다.

이 작품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지점은 인간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 무리가 아니다. 구조를 원하는 시민들을 향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물대포를 쏘며 진압하는 공권력과, 재난의 틈바구니에서도 탐욕을 드러내고 약자를 착취하는 포주의 민낯이다. 노숙자 문제를 비롯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좀비라는 재난으로 그려낸 ‘서울역’은 연상호의 좀비 영화 중에서 사회 고발 메시지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 작품이다.
한국 좀비 영화의 역사는 ‘부산행’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 외국 B급 마니아 장르 정도로 취급받던 좀비물을 한국 상업 영화에 완벽히 편입시키며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크로바틱 좀비’가 선사하는 시각적 충격, KTX열차라는 좁고 밀폐된 공간을 무대로 펼치는 속도감, 그리고 한국 특유의 가족애와 사회 비판적 메시지는 ‘K-좀비’ 장르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연상호 감독은 좀비물과 열차 액션 장르를 영리하게 결합했다. 좁은 열차 칸에서 벌어지는 좀비와 사투는 훨씬 처절한 공포와 긴장감을 주었다. 주인공들을 밀어내는 승객 집단은 생존 본능만 남은 좀비들과 다를 바 없이 그려지는 반면, 주인공 석우(공유)와 상화(마동석)는 연대와 희생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낸다. 극한 상황에서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연니버스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다.
연니버스의 세 번째 영화 ‘반도’는 ‘부산행’에서 4년 후, 폐허가 된 한국을 배경으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부산행’ 속편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고, 전작의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좀비가 장악한 대한민국 전체로 무대를 넓혔고, 현란한 카체이싱과 총기 액션으로 다른 결의 스펙터클을 선보였다. 타락한 군인 집단 ‘631 부대’는 ‘반도’의 또 다른 공포다. 좀비를 놀잇감으로 다루는 부대원들의 만행은 좀비보다 야만적인 인간성을 들추며, 위기 앞에서 시스템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연상호 감독이 ‘반도’에서 부각한 건 좀비와 인간의 대결보다 일상화된 재난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인간성을 잃은 631부대원들과 대조를 이루는 민정(이정현) 가족, 그리고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정석(강동원)의 선택을 통해 ‘부산행’보단 희망적인 결말을 제시했다. 전작에서 수동적이었던 여성과 어린이 캐릭터를 주도적인 인물로 내세운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후 넷플릭스 영화 ‘정이’와 ‘군체’에 이르기까지 연상호 감독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은 점점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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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직접 연출하진 않았으나 각본을 쓴 드라마 ‘방법’(2020)과 영화 ‘방법: 재차의’(2021)는 연니버스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좀비 바이러스 대신 주술과 무속이 결합한 오컬트 세계관을 택했고, 여기서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는 평범한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해 구분조차 힘들다. 주술사의 조종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재차의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좀비와 차별화되며, 연상호의 세계관이 통제된 공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방법’에서 진화를 예고한 연상호 감독은 ‘군체’에서 한층 도약한 좀비를 선보인다. 감염자들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전술을 짠다. 연니버스에서 가장 강력한 좀비 집단의 탄생이다. 한 개체가 습득한 정보와 인간들의 도주 패턴이 무리 전체로 전달되는 설정은 예측 불가능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좀비 떼가 일제히 고개를 쳐들며 동기화하는 장면, 하얀 균사체 점액질이 뒤덮인 장면은 연니버스에서 가장 압도적인 공포다.
‘군체’에서도 연상호의 시선은 좀비에만 꽂혀 있지 않다. 초고층 빌딩에 갇힌 생존자들을 방치하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전작들부터 이어져 온 시스템 비판의 연장선이다. 연니버스에서 괴물은 언제나 두 얼굴이었다. 바이러스로 탄생한 좀비와 위기 앞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들이다. ‘군체’의 과학자 서영철(구교환)은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전작들의 악역과 다르다. 전작의 악역들이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을 위해 움직였다면, 서영철은 시스템을 장악하려는 욕망과 인간에 대한 혐오가 뒤엉킨 인물이다. 좀비 바이러스의 주체가 처음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연상호의 시선은 인간의 뒤틀린 욕망으로 확장된다.

‘군체’는 매력적인 좀비 영화다. 연상호 표 좀비 떼의 스펙터클, 초고층 빌딩을 무대로 한 생존 액션은 극장에서 즐겨야 한다. 연상호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비에게 집단 지성을 부여해 공포의 본질을 바꿔 놓는다. 연니버스의 좀비는 더 이상 본능에 따라 날뛰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어 학습하고 결속하는 초유기체다. 10년간 진화해 온 연니버스는 이 질문에 도달한다. 좀비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임을 증명할 것인가?’. 연상호 감독이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연니버스는 계속될 것이다.
정유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