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 5위(2014년 통계)의 제지생산 강국이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스웨덴, 캐나다 등 전통의 제지 강국들을 제치고 이뤄낸 쾌거다. 한국의 제지 생산량 성장률은 연평균 4%대로 '톱10'에 든 국가들 중 가장 높다. 제지의 주원료인 펄프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도 기술 개발을 통해 폐지 재활용률을 세계 톱 수준인 92%까지 끌어올린 결과다. 향후 글로벌 제지업계를 이끌어나갈 제지 강국 기대주로서 한국이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이유다.
이 같은 대외적 성과와는 반대로 국내에서 제지업종을 바라보는 시각은 싸늘하다. 국제산림관리협회(FSC)가 인증한 친환경 펄프를 주원료로 쓰고 한번 쓴 폐지는 재자원화 과정을 통해 생산 공정에 투입하지만 '환경파괴산업'이란 꼬리표는 여전하다. 더구나 정보기술(IT) 기기의 발달로 신문용지, 인쇄용지 등 제지 수요가 점점 줄고 있다는 점에서 사양산업으로 분류된 지 오래다. 정부는 한술 더 떠 학교 교과서의 디지털화를 추진한다며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를 전자 교과서로 교체하는 작업을 논의 중이다. 멀티미디어 자료 등 풍부한 학습자료가 추가된 선진국형 교과서는 전자교과서에서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제지업종에 대한 '푸대접'은 변변한 관할 정부부처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 제지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섬유세라믹과에서 관할한다. 제지업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산업에 곁다리로 묶인 '깍두기' 신세다. 제지업체들의 애로점을 청취하고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 추진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제지업계의 이익을 대변할 협단체(협동조합 제외)로는 사단법인인 한국제지연합회가 유일하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국내 제지업계는 묵묵히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줄어드는 내수시장의 대안으로 수출주도형 산업으로의 체질개선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현재 국내 제지 생산량의 30%가 수출된다. 신문용지, 인쇄용지, 백판지같은 일부 지종의 수출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그러나 단순 제품 수출만으로는 해외시장에서 궁극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현지 직접투자 등 다양한 대응책이 강구돼야 한다. 제지업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육성, 지원책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