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117,800원 ▼2,100 -1.75%)기획실 공시 담당자는 3일 한국거래소(KRX)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 저녁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구형을 했던데,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으니 공소장을 보내달라"
놀란 ㈜한화 기획실 직원들은 거래소의 상장규정 시행세칙을 다시 살펴봤다. 그리곤 지난해 4월부터 새롭게 시행된 규정을 찾아냈다. 대기업의 경우 자기자본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횡령·배임에 대한 검찰 기소가 있는 경우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1월29일 김 회장 등 관련 임원 3명이 ㈜한화에 대해 899억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공소를 제기했다. 규정상 한화는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했다.
10대그룹 주력사가 횡령 배임 혐의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한 사태는 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초고속으로 마무리됐다. 거래소는 단 이틀 만에 검토를 끝냈다. 실질적인 거래정지도 없었다. 그리고 거래소는 ㈜한화를 퇴출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화그룹이 제출한 경영투명성 개선방안과 이행계획서가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됐다"는 이유였다.
반면 지난해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증시에서 퇴출된 11개 코스닥 기업들에게는 이같은 이행계획서를 신속하게 검토하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는 '배려'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 11개 코스닥 기업의 주주들은 약 2주에 걸친 거래정지 기간 동안 쓰린 가슴앓이를 한 끝에 종목 퇴출과 함께 투자한 돈을 대부분 날리는 아픔을 겪었다. 유독 ㈜한화만 거래정지도, 상장폐지도 없었던 것을 두고 '대기업 특혜'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거래소는 2개의 독배 중 1개를 택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하나는 "형평성을 어겼다"는 비난, 하나는 "시가총액 3조원의 대형주를 단숨에 퇴출시켜 4만명의 주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비난이다. 거래소는 그마나 덜 독한 첫번째 잔을 택했다. 이미 비슷한 이유로 퇴출됐거나 퇴출위기에 처한 속칭 '잡주' 주주들의 비난은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까.
일부에서 제기하듯 가차없이 매매정지 시키고 상장폐지를 검토했어야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 없이 검찰이나 한쪽 당사자의 문제제기에 의해서, 혹은 전임 경영진의 횡령 배임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퇴출의 잣대를 들이대는 현재의 시스템이 문제가 있는지를 돌이켜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대기업 봐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중소기업 무시하기'가 더 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