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A씨(32세)는 지난 21일 서울 한 시내 면세점에서 루이비통 스피디 반둘리에 20 가방을 살펴보던 중 직원으로부터 "백화점에서 사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뜻밖의 조언을 받았다. 당시 면세점 가격은 390만원대였지만, 백화점 판매가는 382만원으로 더 저렴했다. A씨는 즉시 바로 옆에 있던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겨 원하던 가방을 구매했다.
원 ·달러 환율 급등이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과거 '백화점보다 싸다'는 이유로 출국객은 물론 내국 소비자에게 폭넓게 선택받던 면세점이 지금은 오히려 "백화점보다 비싸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환율이 147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인기 수입 브랜드의 면세점 판매가가 국내 백화점 정상가보다 더 비싸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 환율 흐름을 보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지난 9월초 139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오늘(24일) 기준 1473원까지 올랐다. 달러 가치 급등은 곧바로 면세점 상품 가격에 반영되면서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졌다. 달러로 가격이 고정된 수입품은 환율이 오를수록 판매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부 인기 브랜드 상품은 백화점 정상 판매가와의 격차가 사실상 사라졌고, 일부 품목은 면세점 가격이 백화점을 웃도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면세점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올 3분기 면세점 판매액은 3조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5% 감소했다. 면세업계가 지난 몇 년간 추진해온 온라인 면세점 활성화, 재고 면세품 판매 확대 등과 같은 판촉 전략이 효과를 내지 못할 정도로 환율이 구매심리를 짓누르고 있는 셈이다.
가격 경쟁력이 무너지는 상황을 버티기 위해 면세점 업체들은 최근 이른바 '기준환율' 조정에 나섰다. 이달초 업계가 일제히 내부 기준환율을 기존 1350원에서 1400원으로 올린 것이다. 이 기준환율은 소비자 결제에 쓰이는 환율이 아니라, 내국 생산품(국산품)의 달러 표기 가격을 산정할 때 사용하는 내부 환율이다. 쉽게 말해 국산 화장품처럼 원화로 출고되는 상품가격을 달러로 매길 때 사용하는 숫자다.

원가가 10만원인 국산 화장품의 경우 기준환율이 1350원일 때는 면세점 달러 표기 가격이 약 74.1달러지만 기준환율을 1400원으로 올리면 71.4달러로 내려간다. 같은 원가라도 달러로 환산하는 기준이 달라지면서 수치상 달러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산품에 한해서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면세점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가 기준환율을 손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환율 급등으로 떨어진 경쟁력을 국산품에서라도 일부 회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미세 조정'이 전체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아니다. 기준환율 상향은 국산품에만 적용되고 명품, 수입 화장품·패션·주류처럼 면세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입 브랜드는 여전히 매일매일 변동하는 실시간 원·달러 환율이 적용된다. 결국 달러 가치가 계속 높아질수록 수입품 가격도 함께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도 "기준환율 조정은 국산 비중이 높은 일부 카테고리에서만 부분적인 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뿐 환율 상승 압력을 완전히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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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환율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면세점과 백화점의 가격 역전 현상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면세점 = 최저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백화점·온라인몰과 직접 가격을 비교해보고 '차라리 백화점이 낫겠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