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독점의 횡포, 공공의 역할

[우보세]독점의 횡포, 공공의 역할

김지산 기자
2019.03.11 15:11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제약사들에게 한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신약이라고 해서 약값을 후하게 받으려고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간 큰 코 다친다. 대체 가능한 약이 하나라도 있으면 약값을 비싸게 받을 생각을 접어야 한다.

보건당국의 이런 전략이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상대가 대체 불가능한 의약품이나 기기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환자들에 약을 공급했다가 정부와 협상이 틀어지면 공급을 중단해버리는 수법에 정부는 매번 당한다. 2000년대 초반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서부터 지난해 조영제 리피오돌을 공급하는 게르베코리아까지, 정부는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

최근 알려진 미국 고어사 사례. 고어는 2017년 10월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필수적인 인조혈관 공급을 중단하고 국내에서 철수했다. 대체품이 있다는 이유를 대며 일부 제품 공급을 하지 않아 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는 고어가 수가에 불만을 품고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료가 없어 수술을 못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정부는 고어가 요구하는 건 가능한 다 들어주겠다고 사실상 항복했다. 환자 목숨을 담보로 한 외국 기업의 도박에 정부가 당한 사례 하나가 추가될 판이다.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한 안전판 확보 요구 내지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있었다. 독점을 무기로 한 기업에 맞설 수단으로서 '공공제약사' 설립은 그중 하나였다.

공공제약사 논의는 개발비용에 비해 시장성이 따라주지 않아 민간기업이 꺼리는 의약품을 생산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제3세계에서 유행하는 질병 치료제나 백신이 좋은 예다. 해외 여행객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입국했을 때 유행 징후가 보여도 기업은 선뜻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못한다. 이런 류의 환자가 1년에 몇 명이나 있을 것이며 유행이 잡히면 약으로서 시장성은 제로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세계 인공혈관 시장은 3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다면 큰 시장일 수 있지만 민간기업이 뛰어들기는 부담이 크다. 기술적 어려움은 고사하고 오랜 기간 임상을 거쳐 성공한다 해도 세계적으로 신뢰도가 쌓인 기존 사업자들을 넘어설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고어 같은 기업들과 '밀당'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대안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건보재정도 지키고 동시에 '문재인 케어' 속도도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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