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비 삭감한다고 누가 그래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7월 기자들과 만나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 삭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R&D(연구·개발) 삭감 없이 예산 재조정·분배를 자신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올해 대비 2989억원 삭감(25개 출연연 주요사업비)이었다.
내년도 정부 R&D 예산은 올해 대비 5조2000억원(16.6%) 깎인 25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R&D 예산안이 전년보다 감소했던 해는 30여년전인 1991년으로 당시 전년보다 약 970억원(10.5%) 깎인 8241억원이 편성됐다. 내년처럼 수조원 예산 삭감은 사실상 초유의 일이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면 구성원에게 이해를 구하고 섬세한 소통은 필수다. 하지만 연구자들도 R&D 예산 삭감 배경인 '카르텔적 요소'를 알지 못한다. 예산 삭감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면 '카르텔', '반국가세력'으로 몰리는 상황에 입을 닫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카르텔은 기업 보조금 성격의 R&D 등이다. 카르텔이 있다면 구체적 사례와 예산 삭감분을 매칭해 설명하면 될 일이다. 과학계도 2008년 R&D 예산 10조원 돌파 후 양적 확대를 거듭한 만큼 점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상당수 공감한다.
하지만 R&D 예산 삭감 배경을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한 적절한 체중감량'으로 비유하거나 '젊은과학자 지원 예산은 오히려 늘렸다'는 설명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국민들도 어떤게 나눠주기고 유사중복인지 모른다. 사례를 설명해달라"(장제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특히 예산 재조정 기간에 이 장관을 비롯해 주요 관계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예산 삭감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없었다. 사실상 리더십 부족, 소통능력 부족으로 문제가 격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부처 1급 '연구개발정책실장' 등이 교체됐다. R&D 예산 삭감 논란에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어공(어쩌다 공무원) 책임을 늘공(늘 공무원)이 책임진 것이다.
연구 현장에선 이 장관이 부처 수장이자 연구자로서 예산 삭감 문제에 최소한 유감 표명은 해야 한다고 본다. 전 정부에서 과도하게 늘린 예산을 정상화한다는 발언은 그간 부처 늘공들이 추진해온 정책에 대한 자기부정이자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말이다. 과기정통부 장·차관들부터 현 상황을 냉정히 되돌아볼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