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AI 시대의 '디지털 콩키스타도르'

[투데이 窓]AI 시대의 '디지털 콩키스타도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2025.11.05 02:05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16세기 최강 제국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는 신대륙의 정복자였다. 그들은 총칼로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금과 은을 약탈했으며 설탕농장에서 노예노동을 강요했다. 겉으로 문명과 기독교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제국의 탐욕을 정당화했을 뿐이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제도가 권력과 결합할 때 정복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한편 오늘날 AI산업 확산에서도 콩키스타도르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다. 갑옷과 무기 대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손에 쥔 '디지털 콩키스타도르'가 전 세계를 누빈다. MIT테크놀로지리뷰 기자 카렌 하오는 2022년 연재한 'AI 식민주의'에서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고 무기가 총에서 알고리즘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녀의 지적처럼 AI는 단순한 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자원과 노동, 권력을 둘러싼 새로운 정복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AI 식민주의는 AI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첨단 기술일수록 격차는 더 커진다. 특히 AI분야는 소수 거대기업이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앞세워 기술을 독점하는 초격차 현상이 두드러지는 영역이다. 그 결과 AI 독점국가와 기업은 압도적 선두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종속적 위치에 머문다. 과거 제국이 무력과 경제력으로 세계를 재편했다면 오늘날은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그 역할을 한다. 이런 지배-종속구조에서 글로벌 남반구 청년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데이터 라벨링 작업에 종사한다. 이들의 노동은 우리가 사용하는 번역기, 검색엔진, 챗봇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대가는 터무니없다. 과거 원주민의 땀과 피로 세워진 유럽의 대저택처럼 오늘날의 AI 혁신도 보이지 않는 고통 위에서 구축된다.

자원착취 양상도 놀랍도록 과거와 유사하다. 정복자들이 금과 은을 실어나르는 배를 띄웠다면 디지털 정복자들은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세워 막대한 전력과 물을 빨아들인다.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지역에서 생존자원이 고갈되는 현실은 기술발전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새 정부는 'AI 강국과 AI 기본사회'를 비전으로 내세우며 소버린 AI, 데이터 주권과 포용적 AI 등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선언적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소버린 AI는 단순히 국내 기업이 자체 모델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자국민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한 주권을 확립하고 외부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돼야 한다. 데이터 주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언어와 생활, 문화 데이터가 해외 빅테크 서버로 흘러들어가고 다시 비용을 지불한 뒤 수입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이는 또 다른 식민주의일 뿐이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데이터는 21세기 디지털 사회의 원유이므로 이를 지키는 건 국가안보이자 미래 경쟁력이다. 둘째, 민주적 가치와 사회적 신뢰를 반영하는 소버린 AI를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셋째, 공동체 기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개발 초기부터 시민과 지역사회가 참여해야 AI가 독점적 권력이 아니라 공공재로 자리잡을 수 있다.

AI는 세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편리함과 혁신의 이름 뒤에 누군가의 희생이 감춰진다면 이는 곧 식민주의의 재현이다. AI 대전환기에 한국이 기술종속의 변방으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문명전환을 주도할지는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달렸다. AI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연산속도나 편리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인간적 창의성을 확장하며 미래세대가 주체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AI 식민주의 도전은 엄중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디지털 콩키스타도르를 넘어 AI를 인류 모두의 자산으로 만드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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