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강의 때문에 대학로에 갔다가 혼자서 저녁 시간을 맞았다. 칼국수 집 생각이 나서 혜화동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있던 집이니 최소한 35년이 넘은 집이다. 허름한 집이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국수 맛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식사 후 내 발걸음은 머뭇머뭇 골목길 안으로 이어졌다. 어려서 서울 올라와 10년 가까이 살았던 곳이라, 내게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런데도 그곳으로 가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편치가 않았다.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삼선교와 동소문동 일대의 엄청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녔던 그 지역은 정갈한 한옥촌이었다. 여러 해 전 동소문동에 가게 되었을 때 변해버린 그곳의 풍경을 보고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 산등성이까지 점령해버린 고층 아파트의 위용 때문이었다.
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 때문에 삼선교에서 미아리로 가는 도로가 음침한 산골짜기처럼 변해버렸다. 서울식 디귿자 한옥들은 태반이 헐려버렸고, 그나마 몇 남지 않은 한옥들은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때 놀랐던 마음이었던지라 혜화동이라고 무사하겠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예전의 혜화동이 아니었다. 깨끗한 양옥과 품위 있는 한옥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던 자리는 다세대 주택들로 채워져 있었고, 아직 옛날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한옥들도 벽을 덧대고 지붕을 늘려 옹색하고 추레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어릴 적 기억들이 스며있는 골목 모퉁이들을 돌아설 때마다 내 기대는 어김없이 배반당했다. 오직 하나, 예전의 당당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옥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보았더니 동사무소 건물이었다. 관청이 고마울 때도 있다 싶어 혼자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골목길을 돌아나오려니 오히려 마음속에서부터 자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의 그런 태도란 박물관에 온 관객의 태도가 아니냐, 너의 그 서푼 어치 추억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중요한 게 아니냐, 너라면 옛날식으로 한옥 관리하면서 살 수 있겠냐.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소리들이었다.
독자들의 PICK!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혜화동의 추억이 과연 나만의 것일까. 나와 같은 시절을 그곳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런 추억들이 모여 한 도시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지고, 그런 기억들의 집합이 있어 한 도시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기억을 보존하는 것도 현재의 삶의 편리를 도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내 안에서 다투는 두 개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느 쪽도 편들 수가 없었다. 다만 아름다운 동네의 풍경 하나가 사라진 것만이 가슴 아팠다.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보낸 35년 동안의 삶, 혜화동에서 화곡동을 거쳐 강남으로 이어지는 내 삶의 태반이 여러 사람들의 학살당한 기억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은 단지 바뀐 주거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몇 해 전 토요일, 학회 때문에 예전에 다녔던 대학에 갔다가 일군의 사람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대학원을 다닐 적에 함께 동양고전을 강독하던 사람들이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그들과 함께 나도 두해 정도를 함께 공부했었다. 그들은 15년 전의 모습 그대로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그 짧은 시간이 지나자 가슴이 저려왔다. 시간이 그들만은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람도 삶도 시간 앞에 장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삶의 난폭한 지배자인 시간과 어떤 거래를 하느냐는 우리 자신의 성숙성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존중한다면 시간도 우리를 존중해줄 것이다.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어준 혜화동의 낡은 칼국수 집이 사랑스럽다. 그러자 문득, 솔베이지의 노래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그 모습 그 대로 30년 동안 나를 기다려준 광장시장 냉면집의 모습이 새삼 눈앞에 떠올랐다. 그대의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