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 상담하러 갔다가 졸지에 '촌지 준 엄마'로 소문이 나 속상했던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을 둔 한 학부모의 말이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학교에서는 이른바 '상담 주간'을 운영한다. 담임교사와 학부모 간에 소통하는 자리다. 아이의 학교생활은 물론 가정생활, 진로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한다. 마침 이 학부모도 상담 일정이 잡혀 학교를 찾았다. 딸이 4학년이 된 뒤 처음 담임선생님과 마주하는 자리라 뭐라도 정성을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고민했지만, 결국 이런 생각을 접고 빈손으로 갔다. 교실에는 때마침 한 아이가 홀로남아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딸의 급우로 보여 가볍게 눈인사도 나눴다. 이 학부모는 평소에 몰랐던 딸의 행동들도 알게 됐다며 상담에 매우 흡족해 했다. 집에서 아이와 있을 때도 선생님과의 대화를 참고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담임교사와의 상담자리가 얼마 후 '돈을 주고받은 자리'로 둔갑해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딸 친구 엄마가 전화를 해줘 알게됐다고 한다. 홀로 교실에 앉아 있던 아이가 담임교사와 친구 엄마의 상담하는 모습이 생소했던 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촌지수수'로 포장해 얘기했고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자신의 집에, 급기야 학교 다른 선생님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담임교사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이 아이는 자신의 잘못된 말에 대해 모두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잘못된 말을 퍼드린 이 아이에게 악의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또 일이 그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을 것이다.
요즘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교사들은 "다른 행정업무도 많은데 집에서 교육이 제대로 안 된 아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이 학생생활지도에 의지가 없고 너무 소홀한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다. 학부모와 교사 간 신뢰실종의 한 단면이다.
신뢰를 복원하려면 교육 주체인 학부모와 교사, 가정과 학교 간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아이의 교육문제를 놓고 교사와 학부모가 소통하고 같이 고민하는 과정이 쌓여야 한다. 자칫 불미스런 일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면담이나 상담을 기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자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이 활성화돼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교사의 행정업무가 과중하다는 것도,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잡무처리가 학생지도의 소홀을 합리화하는 구실이 돼선 곤란하다. 학부모도 1년에 한두 번 하는 학예회·장기자랑 등 특별한 학교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색내선 안 된다.
최근 정부는 '학교폭력 대책'을 또 내놨다. 이번에도 상담사·학교경찰관 등 양적확충이 강조됐다. 그러나 실효성에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한다.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무관심이 첫번째 원인이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게 맞다.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학교와 가정의 원활한 소통을 지원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으면 어땠을까. 적어도 교사와 학부모의 면담이나 상담자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반목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학교폭력을 막기는커녕 결코 좋은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백날 대책만 세워봐야 말짱 헛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