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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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대우건설의 저력과 경쟁력을 믿습니다" 지난 1977년 평사원으로 대우건설에 입사해 30년만에 대표이사까지 오른 박창규 사장은 대우건설에 대한 애정을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내외 현장과 외주구매본부장, 토목사업본부장, 토목·공공부문장 등 요직을 두루거친 정통 건설맨이다.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게 최우선 목표'라는 박 사장은 평소 부드러운 편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맺고 끊는게 분명하고 추진력이 강한 덕장으로 통한다. 그는 지난 90년대 파키스탄 고속도로 건설현장 소장으로 있을 때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과는 지금도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인간미가 넘친다. 당시 그는 일년에 한번 휴가차 서울에 오면 휴가를 보내기보다는 파키스탄 현장에 있는 직원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고충을 들었다. 박 사장은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겪고 대우건설이 업계 정상으로 우뚝섰다"며 "앞으로 기술력과 인재, 사업개발능력 등 대우건설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한
대한민국 1등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2년연속 1위. 대우건설의 성적표다. 1위를 한 번 차지하기도 어려운데 '2연패'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 때문에 대우건설 앞에 붙는 '1등'이라는 수식어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건설업계 1위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기 때문일까. 대우건설은 내년 '3연패 달성'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대우건설의 다음 목표는 '글로벌 톱 10 기업'이 되는 것이다. '1등 건설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창규 사장은 "국내 1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회사가 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세계 10대 회사가 될 수 없다"며 "따라서 현재 전체 사업대비 15%인 해외사업비중을 20~25%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박 사장을 만나 1등 기업이 된 비결과 경영계획, 해외사업 전략 등을 들어봤다. - 대우건설에 입사하신지 올해로 30년이 되셨는데, 그 때와 지금을 비
"勇將不如知將, 知將不如德將(용장불여지장, 지장불여덕장)" 신용정보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A&D신용정보의 이상대 대표(사진)는 업계에서 보기힘든 '덕장(德將)'스타일의 CEO다. 강하게 밀어붙여 업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실타래가 풀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는 A&D신용정보에 바람직한 채권관리 문화를 도입하는데 큰 도움이 됐는데, 직원들은 특히 고객 서비스 개선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이 대표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고 있다. 신용정보협회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도입한 신용관리사 첫 시험에서 A&D신용정보는 최고의 합격율을 기록했는데, 이 대표의 역할이 컸다. 여타 신용정보사 CEO들은 직원들에게 신용관리사 시험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직접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가 좋아하는 책들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등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는 것이다. A&D신용정보 관계자는 "회
채권관리의 역사는 상당한 기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학계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인들의 유적에서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막대들이 발견됐는데 이 막대는 상인과 소비자들의 신용거래에 쓰인 것으로 분석된다. 외상으로 물건을 사거나 돈을 빌릴 경우 진흙에 이 막대의 무늬를 찍어 근거자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원전 4500년 이전에 이미 신용거래와 함께 채권관리 업무도 함께 이뤄졌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처럼 금융과 그에 수반되는 채권관리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금융산업의 연장선이 아닌 별개의 업무로 오해받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는 채권관리 자체가 경제적 약자로 떨어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도 서비스보다는 용역에 가깝다는 오해가 많다. 이런 점에서 "신용정보사의 업무는 채권추심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신용 컨설턴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이상대 A&D신용정보 대표이사(사진)의 지론은 주목할만 하다. 신
"신성을 떠나는 그날이 건설을 떠나는 날입니다." 지난 1976년 신성건설 공채로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오른 윤문기 사장은 신성과 건설에 대한 애정을 이같이 말했다. 윤 사장의 경영철학은 '열린경영'과 '글로벌 경영'이다. 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세계 최고의 건축 공학도를 꿈꾸며 자라온 그는 "땅위에 있는 것보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 더 편하다"고 했다. 윤 사장은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 등 건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직접 찾아 다니며 해외시장공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의 집무실에는 커다란 세계 지도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는 상장회사의 대표이사, 1군 건설회사의 대표이사라는 직함보다 건축엔지니어라는 직함에 더욱 애착을 갖고 있다. 윤 사장은 "신성만의 특화된 기술로 만들어진 건축물을 보고 있을 때 건설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단 한명의 고객, 단 한명의 직원의 의견이라도 경청하고 소중히 생각하는 윤문기 사장. 사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우기
'미소지움'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신성건설. '건설외길 55년, 해외건설 30년'역사의 신성건설이 중동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두바이에서 랜드마크 빌딩 건립에 나서 우리를 미소짓게 하고 있다. 중동에서 한국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기 때문. 두바이 비즈니스베이 중심에 지어지는 신성타워 2개동은 부지 구입에서부터 건립까지 신성건설이 직접 개발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초 개발계획을 발표한 이 오피스 빌딩은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외 8개 회사가 이 빌딩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국내외 금융기관 2곳은 이미 인수제안서를 회사측에 전달한 상태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윤문기 사장. 그는 입사 30년째인 지난 2005년3월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두바이 비행기에 올랐다. 글로벌 경영을 위해서다. 1년여동안 철저하게 사업성을 검토한 윤 사장은 두바이 오피스빌딩 건설계획을 내놓았고, 착공도 하기 전에 사실상 성공을 거뒀다. 신성건설 윤 사장을 만나 해외사업 전략과
대한민국 수출의 '보이지 않는' 큰손의 하나가 수출보험공사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무역흑자 250억달러 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전체 수출의 20%가량이 공사의 지원을 통해 이뤄진다. 금액으로 연간 80조원 이상을 지원하는 세계 5대 수출신용기관이다. 수출보험공사는 최근 크게 변모하고 있다. 자원개발·플랜트금융은 물론 영화·해외광고펀드 등 다양한 신상품 개발을 검토하는 등 국민에게 한발짝 다가서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조환익 사장(57)이 있다. 취임 한달을 넘긴 그를 만나 수출보험공사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일반인들에게 수출보험공사는 아직 생소한데요. ▶수출을 한 후 문제가 발생해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통해 손실을 보상하는 기관입니다. 업무영역이 다양한데도 '수출'이라는 전통적 업무에만 초점을 맞춰 대국민 친숙성이 떨어진 측면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공사가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분야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조선·플랜
1983년 제주 관덕로 버스 정류장. 많은 사람들이 큰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검찰, 경찰서를 옆에 두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우체국 앞 계단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제주우체국 지도과장은 사람들에게 그늘에 가서 기다릴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체국이 좋아서 왔는데.."라며 버스가 올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더 지난 지금. 당시 제주우체국 과장은 우정사업본부의 CEO가됐다. 그는 우정사업이야 말로 고객들에게 친근한 서비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가 돼야 한다는 것을 그때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강조하는 '고객만족 경영'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정경원 우정사업본부장(51. 사진). 취임한 지 2개월이 갓 지난 새내기 본부장이지만 27년 공무원 생활의 3분의 1 가량을 우체국 업무와 밀접한 곳에서 보낸 우정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1시간 남짓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바로 '고객'이었다. 조
사장접견실 문이 열리고 와이셔츠 차림의 그가 들어왔다.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거침없고 솔직한 말투와 스스럼없는 태도로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그는 금융권 CEO 최초로 4연임한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63)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는 파산상태였던 회사를 아시아 1위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아시아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금융회사는 코리안리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그가 관(재경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어색하기까지 하다. 박 사장은 1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25년간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다. 재경부 공보관을 지낸 그는 98년 7월 코리안리(당시 대한재보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CEO의 길을 걷게 됐다. 취임 당시 적자 투성이였던 회사를 반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은 그는 놀라운 추진력으로 주위의 우려를 잠재워버렸다. 호사가들의 입방아도 그를 지치게 하지는 못했다. 박종원 사장은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압도하고, 뚝심으로 밀어붙인다. 직원들을 숨돌릴 틈도 주지 않을
"곁눈질하지 않고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는데 4연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실히 따라준 임직원의 노력 덕분입니다. 임직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사진)이 꿈의 4연임에 성공했다. 금융권 CEO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4번째 연임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실적이 좋아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 사장은 적자에 허덕이던 아사 직전의 회사를 세계적 초우량회사로 키운 능력과 함께 조직장악력, 시장을 읽는 눈,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오늘의 자리에 우뚝섰다. 재경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한 전문경영인이 된 박종원 사장의 시선은 이제 세계를 향하고 있다. 아시아 1위를 넘어 세계적 재보험사로 도약하기 위한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정기주주총회에서 4연임이 확정된 다음날 박종원 사장을 만나 성공스토리와 경영노하우를 들어봤다. ―먼저 네번째 연임을 축하드립니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한 회사를 세계적 회사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4연임을 하게
이두형 한국증권금융 사장은 1952년 11월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났다. 경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제22회 행정공시에 합격했다. 이후 23년간 공무원으로 생활한 이두형 사장은 1980년 재무부 공보관으로 시작해 국제금융국, 증권국에서 근무했다. 이후 주 독일대사관 재경관, 국세심판소 조사관을 거쳐 재정경제부 은행구조조정 특별대책반에 투입됐다. 1998년 재경부에서의 생활을 접고 금융감독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이 사장은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 기획대외협력팀장을 맡았으며, 이후 총괄·은행팀장, 감독법규관실 법규총괄담당관, 감독정책2국 증권감독과장, 감독정책2국장을 역임했다. 2003년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을 역임하다 공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23년만에 공보관으로 돌아온 이 사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신뢰있는 공보맨'으로 통했다. "공보는 기업과 언론 사이에 마지노 선이다. 공보가 기자를 상대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할 경우 상상을 초월한 혼란을 가져올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증권금융이라는 회사를 맡은 후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엔도르핀이 솟는 탓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두형(사진)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한국증권금융에서의 7개월간 생활을 여과없이 들려줬다. 오랜 공직생활을 접고 생애 처음으로 민간기업 CEO로 자리를 옮긴 이두형 사장은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인다. CEO의 움직임이 많다보니 일선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업무강도에 혀를 내두르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만의 논리적인 화법이 임직원들을 이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7개월간, 증권금융 본업찾기 주력 이두형 사장이 한국증권금융 취임 후 거듭 주장하는 것이 '환골탈퇴'다. 앞서 한국증권금융을 맡았던 홍석주 현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테이프를 끊긴 했지만 금융산업의 대변화가 예고되는 시점에서 한번쯤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게 이 사장의 판단이다. 이에 첫 번째로 돈을 벌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