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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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생명보험의 영업망은 업계 최다, 접근성 최고를 자랑한다. 전국 4487개 농·축협 조합과 1175개 은행 지점 등 약 5700곳이 모두 NH농협생명의 판매망이다. 군 단위에 자리한 영업망 비중이 70%에 달해 찾아가기도 쉽다. 설계사 조직이 움직이는 다른 생명보험사들과 달리 전국 농·축협 조합을 판매채널로 보유한 덕분이다. 보험료도 다른 보험사보다 싸다. 나동민 NH농협생명 대표는 "저축성보험은 5%가량, 사업비 비중이 높은 보장성보험은 최고 20%가량 저렴하다"며 "사업비를 적게 책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이를 유지하는 것은 '이윤을 적게 내더라도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NH농협생명의 대표상품인 유배당 연금보험(보험사 운용수익을 고객에게 배당, 그만큼 회사 수익은 감소한다) 등에도 이런 가치관이 반영됐다. 나 대표가 외형경쟁을 지양하고 고객의 혜택을 중시하는 '착한보험사'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농
나동민 NH농협생명 대표는 지난 20년간 보험업계 선진화 및 혁신을 위해 노력해온 보험전문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학문적 바탕을 닦은 뒤 1997년 대통령 직속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한 이래 국내 보험업계의 투명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에 힘써왔다. 금감위 보험사구조조정위원과 증권선물거래소 생보사 상장 자문위원장, 보험연구원장 등을 지냈으며, 특히 생보사 상장 자문위원장은 2003년과 2007년 2차례에 걸쳐 역임하기도 했다. NH농협금융지주와는 2009년 11월 농협보험 분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지난 3월 초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으로 농협보험이 민영보험사인 NH농협생명으로 독립하면서 초대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겸손하면서도 합리적인, '겸양지덕'을 갖춘 리더이자 1주일에 책 2~3권을 읽는 다독가다. 직원들에게 높임말을 쓸 정도로 상대를 존중하며, 보험원리에 해박한 보험연구가라는 평을 듣는다. 최근 가장 큰 고
지난 3월 취임한 남궁 훈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사진)는 잘나간다는 벤처부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NHN 한게임 창업멤버로서 게임업계에 존재감을 뚜렷하게 심었고 돈도 벌었다. CJ E&M으로 합병된 CJ인터넷(넷마블)의 전문경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위메이드로 합류한 남궁 대표는 '큰 실패경험이 없는 행운아'로 통한다. 하지만 세상에 쉽고 편한 것은 없다는 게 남궁 대표의 생각이다. 남궁 대표가 대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택시운전사와 관광가이드를 했던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남궁 대표 스스로 말하는 '인생을 바꾼' 첫 경험. 택시 운전은 너무 힘들었다. 밥도 못먹고 운전을 해도 5만여 원의 사납금을 못 채우는 날이 수두룩했다. 고참 선배들은 종일 고스톱을 치다 한 바퀴 돌고 오면 하루 벌이가 되는데 자기는 도대체 뭘 잘못하는지 손님을 못 태우고 빈차로 기다리기 일수고, 밥 때도 매번 놓쳤다. 택시운전으로 배운 교훈은 "아~ 남의 돈을 먹는게 쉽지 않구나"이다. 반면
1981년 녹십자 신입사원 공개채용 최종 면접시험장. "전공이 사회사업학인데…. 제약사에서 일을 잘 할 수 있겠어요?"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한 지원자에게 물었다. 다른 부분은 마음에 드는데 전공이 제약사에서 하는 일과 어울릴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지원자는 "입사시켜 주면 회사가 후회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당차게 답했다. 이 지원자는 그해 꼴찌로 회사에 입사했다. 그로부터 28년 후인 2009년 꼴찌 입사자는 녹십자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다. 녹십자 '영업의 레전드(전설)'로 꼽히는 조순태 (사진·58)사장이다. 조 사장은 "고 허 회장이 내 말을 믿고 뽑아 준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며 "그런 마음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한 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최근 주총에서 3년 임기의 대표이사에 재선임됐다. 지금까지도 녹십자에 남아서 일하고 있는 입사 동기는 조 사장을 제외하고 1명밖에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편히 느끼게 하
- 2020년 매출목표 4조원...해외시장 정조준...판매가높아 수익성도 좋다 - 제네릭 부문 매출비중 낮아 약가인하 영향 작아 - '만들기 어렵지만 꼭 있어야할 의약품 개발'이념 - 희귀병치료제 등 성과 가시화...신약개발 재투자 녹십자는 올해 초 2020년까지 국내 매출 2조원, 수출 2조원을 올리겠다고 공식화 했다. 녹십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7700억원 정도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매년 매출액이 4000억원씩 늘어야 한다. 인터뷰전 사전자료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믿기지 않았다. 더욱이 초유의 일괄약가로 제약업계가 죽는다고 앓는 소리하는 시기가 아닌가. 어쨌든 한해 4000억원씩 매출을 늘리겠노라고 큰 소리친 회사 사장이니 목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단호한 표정과 독기어린 눈매로 대담자와 기자를 만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지난 23일 경기도 용인 소재 본사에서 만난 조순태사장의 표정에선 마치 여행떠나는 어린이 같은 설렘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분
한국형 헤지펀드가 출범한지 거의 3개월이 가까워 오지만 여전히 한국 투자자들에게 헤지펀드는 생소하다.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은 것이 사실. 헤지펀드에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세계 5대 헤지펀드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퍼멀(Permal) 그룹의 아이작 수에데(Isaac Soued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뉴욕 본사에서 만나 들어봤다. 퍼멀그룹은 1973년에 설립된 대안투자 전문 운용사로 한국투자증권의 헤지펀드 해외 파트너로 국내에 알려졌다. 한국의 기관투자가 대상으로는 오래 전부터 맞춤형 헤지펀드 전략을 제공해왔다. 현재 21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뉴욕 본사를 비롯해 런던, 파리, 홍콩, 싱가포르, 도쿄, 두바이 등 전세계 9개 도시에 사무실이 있다. 수에데 회장은 퍼멀그룹의 최고 투자 전략가라는 직책도 함께 갖고 있어 헤지펀드 투자 전략에 앞서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 전반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의견을 밝혔다. 대담에는 퍼멀 자산운
얼마 전 수출입은행(수은)의 한 행원이 김용환 행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수은이 준비 중인 은행명칭 변경에 대한 장단점을 조목조목 쓴 글이다. 김 행장은 편지를 읽자마자 바로 이 직원에게 전화해 행명 변경을 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들었다. 김 행장은 이처럼 조직 내 업무에서 소통과 스피드를 강조한다. 지난해 초 취임과 함께 '바로 CEO(최고경영자) 메일', '인트라넷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의 대화 채널을 만들었다. 경영전략회의에서는 본부별 보고를 생략하고 수은 전체의 공동 과제만 토론시켰다. 매주 월요일 아침 본부장 회의 결과는 인트라넷 게시판에 알리도록 했다. 웬만한 보고는 1~2장 분량의 축약보고서나 전화보고로 대체토록 했다. 올해부터는 격주로 '오픈하우스' 행사도 실시하고 있다. 젊은 직원들을 집무실로 초청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자리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김 행장은 경제 전반을 폭넓게 보는 식견과 결단력, 주위의 신망을 끌어내는 친화력 등을 두루
#지난 2월28일 서울의 한 호텔. 수출입은행(수은)이 수출기업들에 핵심 금융지원 전략과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수은은 출범 36년째지만 이날처럼 업무 전반을 설명하는 행사는 처음 열었다. 담당자들은 김용환 행장의 지시로 설명회는 준비했지만 사람들이 몇이나 올지 의문이었다. 썰렁한 좌석을 우려해 행장이 나서 인사하는 순서조차 넣지 않을 정도였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중견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포함해 450여명이 몰렸다. 수출기업들은 금융지원에 너무나 목말라 있었다. #지난해 수은은 일본 금융기관들과 글로벌 포럼을 열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수은이 생긴지 35년 만에 처음이었다. 주 한국 일본 대사가 너무 반겨 아예 정기적으로 하자고 나섰다. 한국과 일본에서 매번 교차로 진행하자는 제안이었다. 또 최악의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김용환 행장이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금융사 관계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무엇을 도와줄지 물었다. 이후 일본 측은 감사의 표시로
불과 3년도 안돼 KB자산운용을 업계 '빅3'에 올려놓은 조재민 대표이사(사진)는 사회생활의 절반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보냈다. 그는 1988년 씨티은행 서울지점 자금부 딜러로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딘 뒤 동양증권 딜링룸을 잠시 거쳤다가 다시 외국계로 발을 옮겼다. 96년 크레디아그리콜 엥도수에즈 홍콩지점에서 2년간 한국데스크 담당으로 근무했고, 이어 스탠다드뱅크 홍콩지점 아시아채권팀장으로 활약했다. 조 대표는 스탠다드뱅크 시절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쳐 상당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용이 우수했던 한국기업들이 순식간에 파산 위기로 내몰리는 바람에 이들 기업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시적 유동성 악화라는 사정을 알면서도 회사의 방침에 따라 채권담보물까지 헐값에 처분할 때는 속이 소태가 됐다. 밤잠을 설친 것도 부지기수였다. 회사에선 한국인이어서 봐주는 것이냐는 질책을 받았고, 국내 거래기업에선 한국인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는 항변을
올 이머징시장 국공채펀드 유망, 수탁액 1위보다 질적으로 1위 목표 2009년 5월 자산운용업계의 시선을 모은 '사건'이 발생했다. 독립운용사 대표가 KB금융그룹 계열 대표이사로 발탁된 것. 주인공은 조재민 KB자산운용 대표이사다. 조 대표는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외환·채권딜러로 활약하다 1999년 설립 3개월밖에 안된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을 투자자들과 함께 인수하면서 운용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한 가닥 한다'는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운용철학 덕분이다. 남의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에게 어찌보면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그는 단 하루도 이를 잊은 날이 없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은 물론 간접투자시장에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바람이 거세게 불 때 KB자산운용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기존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했다. 결국 '차·화·정'이 정반대 방향으로 갔을 때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조 대표는 KB금융그룹의 위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을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카페에 퍼 올 경우, 또 수업시간에 들은 강의내용을 복습하기 위해 MP3 플레이어에 녹음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까. 그럴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아닐 수도 있다. 최근 디지털 콘텐츠 및 스마트 기기의 급속한 보급 등에 따라 콘텐츠 권리자와 이용자 간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저작권의 합리적 보호와 공정한 이용을 도모해 건전한 저작권 생태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한국저작권위원회다. 특히 K팝 등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 저작권에 대한 보호 체계가 새롭게 마련돼야 할 기로에 섰다. 중국 및 동남아 지역에서는 아직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미흡해 우리 저작물에 대한 보호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 및 해당국과 합법적인 이용계약 체결 추진, 한미FTA 관련 저작권문제 대응 등 위원회의 역할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저작권 인프라는 지식사회의 가
이른바 요즘 애들과 통하는 부모라면 '메이플스토리'나 ''카트라이더' 쯤은 알아야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메이플스토리는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1억명 이상의 사용자가 가입돼있는 게임'이라고 소개돼있다. 서민 넥슨 대표는 지난해 12월 '2011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에서 '해외진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수출의 역군으로 인정받은 것. 하지만 최근 서 대표는 허탈하다. 대통령 표창 수상자가 불과 두달 사이에 학교폭력의 주범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게임기업 최초로 매출 1조원, 수출 8000억원을 돌파하면서 국내 1위 온라인게임 업체이자 온라인 종주국의 자긍심을 이어가고 있지만 요즘 같아선 일할 맛이 안난다. "집에서 마약같은 유해한 기업에 다녔냐는 걱정스런 전화를 받았다"는 직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지난 1995년 서울대 컴퓨텅공학과를 졸업한 서 대표는 약속된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개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