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약집이 없다고요?

[기자수첩]공약집이 없다고요?

송복규 기자
2010.06.02 12:51

"OOO 후보 사무실이죠? 저희가 서울 구청장 후보들 주요 공약 비교 시리즈를 준비중인데요. 관련 자료 좀 받을 수 있을까요?"(서울시 출입기자)

"공약집이요? 그런거 없는데…. 그냥 홈페이지 참고하세요. 근데 혹시 △△△ 후보는 공약집 따로 냈나요?"(OOO 후보 보좌관)

'6.2 지방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난달 10일 서울시청 기자실. 서울 25개구의 여·야 구청장 후보 사무실로 전화를 돌리던 기자들이 번갈아 한숨을 내쉬었다.

"투표일까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공약집이 없다고요? 구정 계획도 안세우시고 4년간 구정을 어떻게 이끄시려구." 공약집 없다는 사실에 놀라 처음엔 쓴 소리를 하던 기자들의 말수가 점점 줄어든다. 강남·북, 여·야를 통틀어 준비된 공약집을 내놓은 후보는 열 손가락 안에 꼽혔기 때문이다.

일부 보좌관의 안내에 따라 구청장 후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더 가관이다. "우리 OO구를 서울 최고 지역으로 만들겠습니다", "OO구를 경쟁력 1등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등 온통 추상적인 문구들로 도배돼 있다.

주요 공약도 마찬가지다. '사통팔달 교통망 구축', '지역경제 활성화', '교육명품도시', '행복한 복지도시 구축' 등 그럴듯한 문구로만 포장돼 있을 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나 방안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별, 정당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구청장 후보들이 지역구 국회의원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공천 약속을 받아내기 바빴으니 구정 밑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었을 게다.

지역의 현안이 무엇인지, 4년간 어떻게 구정을 이끌지 등 구정 구상부터 명확하게 세워야 할 시간에 국회의원 눈도장을 찍으러 다녔으니 함량미달 공약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서글프지만 직시해야 할 우리나라 16년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구청장 선거는 4년간 지역을 대표할 일꾼을 뽑는 것이지 국회의원이나 정당의 하수인을 뽑는 게 아니다.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선 4년 동안 성실하게 구청의 살림을 책임지고 이끌 주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 지나친 국회의원의 개입은 지양돼야 한다. 민선 5기 구청장들은 공천부터 공약수립까지 과정을 지켜보며 실망한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더 열심히 구정에 매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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