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희생정신은 매뉴얼 밖에 있다

[기자수첩]희생정신은 매뉴얼 밖에 있다

이강준 기자
2025.09.17 05:41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구조하다 사망한 해양경찰 고(故) 이재석 경사 사고에 많은 국민들이 슬픔에 잠겼다. 그는 당시 매뉴얼이 아닌 자신의 현장 판단에 따라 중국 국적 노인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건넸고 결국 구조에 성공했다. 이 경사가 매뉴얼에만 천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3년 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된 일선 경찰관들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자신의 역할·담당이 아닌데도 추가 인명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현장 판단하에 인파를 분산하는데 손을 보탰다. 한 경찰관이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길목 근처에서 별다른 장비도 없이 시민들에게 "돌아가라"며 울부짖던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국무조정실·행정안전부·경찰청을 모아 이태원 참사 합동 감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서울 용산경찰서 등 현장 대응에 나섰던 경력을 감사 대상으로 정했다. 당시 고위 지휘관들은 이미 수사가 끝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태원 사고는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다"며 "교통경찰이 원래 매년 통제를 해 왔는데 그 해만 안했다"고 감사 방향을 사실상 지정했다.

현장 경찰의 잘잘못을 따질 때 매뉴얼을 철저히 따랐는지 여부가 반드시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매뉴얼보다 현장 판단을 앞세워 구호 활동에 나섰더라도 감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잘못됐다고 결론을 내릴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매뉴얼은 교과서일 뿐 모든 상황에 대한 해답지는 아니다"라고 많은 경찰관들이 얘기한다. 현장에서 최선의 판단은 매뉴얼에 반드시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번 감사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오든 지금도 현장에서 뛰는 경찰관들에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매뉴얼보다 현장 상황에 따라 판단해 대응하는 게 더 바람직할 때도 있지만 지금의 감사를 떠올리며 결정을 주저할 경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다.

이 경사 사고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 건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희생 정신'이 귀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국가·국민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잣대를 대서는 안 되는 이유다. 희생 정신은 매뉴얼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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