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0월 19일.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에서 전과 7범 성병대(당시 46세)가 사제 총을 난사해 경찰관 1명이 숨지고 행인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초저녁 서울 한복판에서 민간인 사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은 서울 강북구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시작됐다.
성병대는 헬멧과 방탄복을 입은 채 평소 악감정을 갖고 있던 중개업자 이모씨(당시 69세)가 사무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씨가 나오자 성병대는 들고 있던 사제 총기를 발포했다. 총알은 이씨를 비껴가 길을 지나던 행인의 복부에 맞았다.
총격에 놀란 이씨는 인근 지하철 4호선 수유역까지 도망쳤다. 성병대는 총기를 버리고 이씨를 끈질기게 뒤쫓아갔고 역 주변에서 붙잡은 이씨 머리를 둔기로 내려쳐 심하게 다치게 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은 "누군가 망치로 사람을 때렸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 사이 성병대는 사제 총기와 가방을 들고 오패산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 가방에는 사제 총기 16정과 흉기 7자루, 사제 폭탄 2개가 들어있었다. 도주 중 그는 차고 있던 전자발찌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오후 6시20분쯤 최초 폭행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고, 약 9분 만에 오패산터널에 도착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서울 강북경찰서 번동파출소 소속 김창호 경감(당시 경위·54세)이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땐 성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터널 위 숲속에서 그가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성만 10여 차례 울렸다. 터널 위 수풀 뒤에 숨어있던 성병대는 주변 목격자 진술과 총성을 따라 자신이 있던 곳으로 접근하던 김 경위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이 과정에서 김 경위는 왼쪽 등 쪽에 총알 1발을 맞았다. 의식을 잃은 김 경위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오후 7시40분쯤 사망했다.
곧이어 도착한 경찰관 2명이 성병대를 향해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을 쏘는 등 총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오패산 터널엔 오가는 차량이 많았기에 많은 시민이 이를 목격했다.
독자들의 PICK!

총격전 중 성병대는 복부에 총알 2발을 맞았지만,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 다치지 않았다.
반면 출동 경찰들은 당시 단순 폭력 사건으로 신고가 먼저 접수돼 방탄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김 경위 역시 야광 밴드만 더해졌을 뿐 보호 기능이 없는 외근용 조끼만 입고 출동했다가 변을 당했다. 27년간 근무하며 24번이나 표창을 받은 모범 경찰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김 경위의 안타까운 순직에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여러 시민이 추적과 진압을 돕는 등 힘을 보탠 끝에 성병대는 오후 6시 45분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도심에서 약 25분간 벌어진 추격과 총격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성병대는 특수강간 등 전과 7범이었다. 특수강간죄 집행 유예 중이었던 2003년 성병대는 청소년을 성폭행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유예받았던 2년 6개월형까지 합쳐 총 7년 6개월형을 복역해야 했고, 전자발찌를 차게 됐다.
형기가 길어진 성병대는 먼저 저지른 특수강간죄를 부인하며 피해자를 무고죄와 위증죄 등으로 고소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무고죄로 기소돼 징역 8개월형을 또 선고받았다. 그가 모든 형을 살고 출소했을 땐 2012년이었다.
성병대는 출소 이후 변변한 일자리 없이 지내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됐다. 시간제 일자리를 구했지만, 근무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만뒀고, 대출받아 시작한 증권 투자도 실패했다.
잇따른 실패에 가족들의 지원도 끊겨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자 성병대는 자신의 생활고를 경찰 탓으로 돌렸다. 그는 '성폭력 범죄를 수사했던 경찰이 배후에서 조직적으로 내 일을 방해하고 있다' '경찰이 날 살해할 것이다' 등의 피해망상에 빠졌다.

성병대는 약 두 달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성병대는 "(총은) 두 달 전부터 만들었고 유튜브에서 폭약 원리를 배워서 만들었다"며 "청계천 부근에서 재료를 구입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성능 시험 결과 그가 제작한 사제 총기는 38구경 리볼버 권총에 버금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10m 거리의 유리병을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범행 일주일 전 중랑천에서 시험 발사하며 사제 총기의 파괴력을 시험하는 등 예행연습을 했고, 범행 당일엔 서바이벌 보호 장구 안에 플라스틱 도마를 덧대는 방식으로 직접 만든 방탄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성병대는 범행 6일 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앞으로 나는 2~3일 안에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며 "부패 친일 경찰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가는 게 내 목적"이라는 글을 올려 범행을 암시하기도 했다.

성병대는 9년 4개월간 수감 생활 중 4차례에 걸쳐 정신 분열 등의 의사 소견을 받은 바 있었으나,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병대는 검거 당시 "자살하려고 한 거다. 나는 죽어도 괜찮다"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고, 현장 검증 과정에서도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속지 마라", "이건 혁명이다. 혁명이 시작된다", "이 사건은 경찰 때문에 발생했다. 경찰은 저를 정신병자로 보고 있다" 등의 말을 외쳤다.
경찰은 성병대가 편집증적 사고와 피해망상으로 인해 누적된 분노로 범행을 계획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봤다.

성병대는 살인, 살인 미수 등 6개의 죄목으로 기소됐고, 그의 요구로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성병대는 모든 것이 조작됐다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숨진 김 경위가 맞은 총알은 자신의 것이 아닌 동료 경찰관의 것이라고 주장해 공분을 샀다.
11시간가량 진행된 재판을 지켜본 9명의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고,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해 실행했고, 피고인의 엽기적인 범행으로 인해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던 경찰관이 극심한 고통 속에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며 "피고인의 살인 범행은 동기에 참작할 아무런 사정이 없고 극단적 생명 경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시했다.
성병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과 대법원의 판결도 다르지 않았고 2019년 1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의 방탄·방검복 실태가 열악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경찰은 경량화된 신형 방탄복을 개발하고 이 방탄복을 방검복과 함께 순찰차에 각각 두 벌씩 배치하는 매뉴얼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