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계기로 '약물 운전'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약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제재 기준이 부재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약물 운전 가이드라인을 정비해 약물 운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종각역 인근에서 3중 추돌 교통사고를 낸 70대 택시 운전자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열렸다. 경찰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상과 도로교통법상 약물 운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 2일 오후 6시쯤 급가속해 종각역 인근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들과 전신주를 충격한 뒤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 2대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13명(외국인 4명)이 다쳤고, 1명이 사망했다.
약물 간이시약 검사에선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왔다. 피의자가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처방 약 복용으로 모르핀이 검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모르핀 성분은 감기약을 복용했을 때에도 검출될 수 있다. 경찰은 정확한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정을 의뢰했다.
약물 운전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약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례는 2020년 54건에서 △2021년 83건 △2022년 80건 △2023년 128건 △2024년 163건으로 4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
2024년 7월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택시가 돌진해 보행자 3명과 승용차 4대를 들이받았다. 택시 운전자 B씨에 대한 약물 검사에선 모르핀 성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는 "평소 다량의 처방 약을 먹었다"라고 진술했다.
2023년 9월에는 수면제를 복용한 일용직 노동자가 운전 중 사고를 낸 뒤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방송인 이경규가 공황장애 치료 약을 먹은 상태에서 운전하다 약물 양성 반응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약물 운전 제재 기준 부재로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약물 운전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수치 기준이 없어 규제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다. 제도적 기반을 먼저 정비하고, 기준을 알리는 홍보·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약물은 종류와 기능이 워낙 다양해 음주(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처럼 단일 기준으로 규정하기가 어렵다"라며 "판단력이나 운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에 대해서는 복용 후 일정 시간 동안 운전을 제한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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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구를 통해 해당 약물과 물질을 정리하고, '복용 후 운전 금지 시간' 등 수치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라며 "약물의 영향에 대한 정보 제공 없이 처벌만 강화하는 데는 실효성이 없다"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으로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약물 운전자에 대한 법정형이 최대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높아지고, 약물 측정에 불응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물 운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의료 현장에도 주의 환기 수준에 그쳤다"라며 "이런 이유로 경찰 역시 약물 복용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거나 일일이 단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방 단계에서부터 운전 제한 여부와 기간을 명확히 하는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하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