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들으면 쫓겨난다" 맞고도 말 못한다...국내 '이주 여성' 인권 실태

"말 안 들으면 쫓겨난다" 맞고도 말 못한다...국내 '이주 여성' 인권 실태

이현수 기자
2026.03.21 07:00

[3·21 국제 인종차별 철폐의 날]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 인터뷰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만난 허오영숙 대표./사진=이현수 기자.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만난 허오영숙 대표./사진=이현수 기자.

"국내 외국인을 늘리겠다는 정책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외국인 인권에 대한 논의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3·21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날'을 맞아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만난 허오영숙 대표는 이주여성 인권실태를 두고 이같이 지적했다.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2000년부터 가정폭력·성폭력 등 범죄에 노출되는 여성 이주민을 지원한다. 센터가 2013년부터 운영 중인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지난해 상담 건수는 약 1만2600건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다. 2014년(약 5300건) 대비 두 배 넘게 늘었다.

상담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가정폭력(19%)이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은 가정폭력을 겪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자 연장이나 귀화 과정에서 배우자의 협조가 사실상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허오 대표는 "피해 여성들이 체류 자격 때문에 폭행당하고도 신고를 주저한다"며 "일부 배우자들이 '말 안 들으면 체류 연장 안 해준다'고 협박하거나 폭력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현장에서는 큰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법무부는 2011년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기간 연장 시 요구되던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를 폐지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배우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비자 연장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허오 대표는 "피해 여성들이 구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살인·폭력과 같은 결혼이주여성 대상 강력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전남 보성에서, 2024년 3월 경남 양산에서, 2023년 4월 울산에서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 참여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구성원들 모습./사진제공=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 참여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구성원들 모습./사진제공=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센터는 '폭력피해 이주여성 자립지원 사업'을 13년째 이어오고 있다. 필수 가전제품과 월세를 지원하고 취업을 위해 관련 기관과 연계한다. 연간 약 20가구씩, 지금까지 총 200여 가구를 지원했다.

허오 대표는 "피해자들이 자립 기반이 부족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이 자립해 주체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체류 외국인 인구가 늘면서 이주여성 지원 수요도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지원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허오 대표는 "전국에 이주여성상담소가 11곳에 불과하고, 특히 외국인이 많은 수도권은 상담 인력이 부족하다"며 "지난해 경기도 센터가 생겼는데도 서울 상담 건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오 대표는 "인구 감소로 이주민 없이 한국 사회가 유지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주민들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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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기자

사회부 사건팀 이현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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