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감위원장의 직구

[기자수첩]금감위원장의 직구

김준형 기자
2003.12.04 11:26

[기자수첩]금감위원장의 직구

이정재 위원장은 4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 금융경영인 조찬강연에서 은행장 등 금융회사 대표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했다.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원고를 토씨 하나 안틀리게 읽는 대신 ,사전에 꼼꼼히 보는 이위원장이지만 유독 이번에는 전날 밤늦게까지 거듭 검토했다.

모처럼 금융기관장들을 한데 모아놓고 이야기를 풀어간 위원장은 "병이 깊어졌을때 치료하는 명의 편작보다 환자의 얼굴빛만으로 병을 예방하는 편작의 형들이 더 훌륭한 의사"라며 편작의 형이 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뒤집어보면 편작의 형은 못됐을망정, 깊은 병을 신묘하게 고치는 편작은 된다는 자신감으로도 들린다. 원고 앞부분에서 "관치금융 비판도 있었으나 책임감을 가지고 신속하게 대처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소엔 시장의 자율이 중요하지만, 정부가 나서야 할땐 관치이야기를 듣더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할일을 해야 한다는게 이위원장의 소신이다.

학창시절 야구 투수까지 했던 그는 홈플레이트를 살짝 걸치며 상대방을 속이는 기교를 부리는 커브보다는 직구를 좋아한다는 비유를 사석에서 한 적이 있다. "커브를 던지려고 손목을 세게 비틀다보면 결국은 선수생명이 단축된다"며 속도만 뒷받침되면 직구가 훨씬 위력적이라고 했다. 금융시장에서도 해야 할 일은 직구던지듯 명쾌하고 단호하게 승부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편작의 평가를 받기에는 아직 금융시장의 병이 위중한 상태인데도 금감위가 시원한 직구를 뿌린 것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4.3대책으로 스트라이크 하나 잡는가 했던 카드사문제는 더 상대하기 힘든 모습으로 타석에 서있다. 생명보험사 상장은 아예 그냥 걸러보냈다.

거느리고 있는 야수나 포수가 미덥지 못해서, 속도에 자신이 없어서, 혹은 투구마다 감독의 사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드사 경영정상화, 전환증권 구조조정, 부실금융회사 책임분담 등 눈앞에 버티고 있는 강적들에게 이번에는 감독당국의 직구가 꽂히는 모습을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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