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미국의 '얄미운' 실리 챙기기

[기자수첩]미국의 '얄미운' 실리 챙기기

최규연 기자
2003.12.07 20:28

[기자수첩]미국의 '얄미운' 실리 챙기기

"할 일을 다 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4일 외국산 철강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철회하면서 한 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정 위반 최종 판정을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내려진 미국 측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크게 반발해야 할 미 철강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철강업계의 로비작업을 주도해 온 인터내셔널 스틸 그룹(ISG)의 회장인 윌버 로스는 최근 세이프가드 존속을 위한 노력을 더이상 기울이지 않겠다고 말해, 순순히 대세를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부시 행정부가 약속한 세이프가드 보장기간이 1년 이상 남았고, 주요 철강 회사들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윙 스테이츠'(Swing States)에 위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철강업계의 이같은 반응은 의외로 비춰진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보복관세 압력때문에 세이프가드를 철회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미 철강산업은 지난 20개월 간 세이프가드로 실리를 톡톡히 챙겼다.

미국 철강산업은 지난 10년 동안 노쇠한 기기와 강성노조, 낮은 생산성 등으로 막대한 적자를 면치 못해 왔다. 그러나 세이프가드 발동 이후 미 철강산업은 대형업체간 인수합병, 노조의 양보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성 등 급격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체질을 강화했다.

또한 세계 경기회복에 힘입어 철강수요는 급증했고 제조업 일자리도 늘었다. 최근 국제 철강 가격은 다른 원자재와 함께 상승 추세를 지속하고 있고 제조업 일자리 감소율도 2년 전의 10만명(1개월 기준)에서 1만7000명으로 줄었다. 여기에 달러 가치는 2년 전의 1.15유로에서 0.83달러로 하락해, 수출업체에 유리해졌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세이프가드는 경기회복 시점까지 철강업계의 경쟁력 재고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어다 줬다. 게다가 미국은 EU의 22억달러 규모의 보복관세 부과 시점을 열흘 앞두고 철폐를 발표했으니, '얄미울 정도로' 실속을 챙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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