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담은 계란도 다 깨지는데..’

‘나눠 담은 계란도 다 깨지는데..’

최남수 MTN 보도본부장
2009.09.04 16:47

[MTN 세상 그리고 우리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그 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왔던 일부 자산운용 원칙이나 투자이론이 틀린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평상시는 맞는 것 같아 보였지만 경제와 금융의 위기 국면에서 보니까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분산투자 원칙과 효율적 시장이론입니다.

먼저 분산 투자 원칙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시청자 여러 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 자주 들어 보셨지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았는데 바구니가 떨어지면 계란이 다 깨지는 것처럼 투자자금을 한 시장이나 한 종목에 몰아서 투자하면 손실의 위험이 크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여러 투자 상품에 돈을 쪼개서 투자하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지요. 한 종목이 떨어질 때 다른 종목의 주가가 오른 다면, 또 다른 종목이 적게 오르는 데 한 종목이 많이 오른다면 손실을 볼 위험도 줄이면서 수익을 늘리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이 같은 분산투자 원칙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이론을 달지 않았습니다. 맞는 얘기라는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돼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앞다퉈 시장을 떠나가 위해 투매 양상을 보이면서 모든 자산 가격이 일제히 곤두박질치자 '여기저기 나눠 투자해 봤자 아무 필요가 없구나'하는 무용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의 심층 보도에 소개된 사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투자자의 나이와 재산 등을 감안해 맞춤형으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이른바 '목표일' 뮤츄얼 펀드라는 상품이 미국에 있는데요. 여러 주식과 채권에 분산투자를 해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식에만 몰아서 투자한 펀드보다 실적이 더 나빴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난 3월초부터 거슬러 올라가 1년 동안의 기간을 보면 S&P 500지수의 하락률은 47%에 이릅니다. 문제는 주식과 채권에 분산투자를 했다고 한 피델리티의 이 펀드 수익률은 이보다 더 나쁜 마이너스 48%를 기록했습니다. 주식이고 채권이고 가릴 것이 값이 크게 떨어지자 분산투자가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분산 투자는 예컨대 한 종목의 값이 내릴 때 값이 오르거나 적어도 변화가 적을 종목들을 섞어 넣습니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과거에 가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종전에는 가격이 다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던 투자대상들 사이의 관계 자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과거에 S&P 500 지수는 외국 주가나 부동산투자신탁과는 움직이는 방향이 달랐는 데 지난해의 경우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거의 비슷한 방향의 오르내림을 보였습니다. S&P 500이 37%가 내렸는데 유럽과 아시아, 호주의 MSCI지수는 45%나 하락했고 이머징마켓 지수도 55%나 폭락했습니다. 또 부동산투자신탁도 마이너스 37%의 부진한 수익률을 나타냈습니다. 투자대상에 관계없이 모두 큰 폭의 손실을 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국주식, 해외주식, 부동산 신탁 등에 골고루 투자하는 게 옳아 보였지만 이게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여 버리니 분산투자를 해 본들 손실을 줄이거나 피할 길이 생기지 않은 겁니다. 이러니 이제 투자자들은 고민이 많아질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효율적 시장이론은 어떻습니까? 투자의 기초가 되는 이론으로 주가가 현재의 모든 정보를 반영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가격을 '군중의 지혜'로 보는 관점이지요. 그래서 규제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평상시는 이 말이 맞아 보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위기가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시장이 붕괴되고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이성적인 야성적 충동에 따라, 심하게 말해 '군중의 광기'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 때문에 증시나 부동산시장 같은 자산시장에서 버블이 생기기도 하고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려 자산을 모두 내다 팔아 가격이 과도하게 폭락하기로 합니다. 효율적 시장 이론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걸 종합해보면 극단적 위기 상황이 일어나자 그동안 통했던 분산투자의 효과나 효율적 시장이론의 설득력이 휙~하고 증발해 버렸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고 질문을 던지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직관적 판단을 잘 해야 한다는 정도의 원칙론을 드릴 수 있을 뿐이지요.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말합니다. "평범한 세계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곧 법칙이다. 그러나 극단의 세계에서는 희귀하고 비일상적인 사건이 느닷없이 일어나 전체를 바꾼다. 이 세계에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존하지 말고 미지의 지식, 반지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게 생존조건이라는 게 탈레브의 조언인데 두고두고 곱씹어 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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