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바람이 불면 눕는데 한국은행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 겁니까?”
지난 6일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장병화 한은 부총재를 질타했다. 발단은 지난달 16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총량관리제 공약이었다. 가계부채가 가처분 소득의 150%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게 골자다. 총량규제에 반대해 왔던 이주열 한은 총재는 공약이 나온 일주일 뒤 기자간담회에서 “한은법에 따른 가계부채 총량제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원칙론적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정 의원이 문 후보를 의식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 것이다.
사실 이런 스토리는 한은 독립성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늘상 존재했던 것이다. 이 총재 역시 이른바 ‘척하면 척’ 사건으로 회자된 적도 있는 당사자다. 2014년 최경환 전 부총리가 “금리의 ‘금’자를 꺼내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하면서 한은이 잇단 금리 인하로 초이노믹스(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기 부양)를 지원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지난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조성과정도 한은의 저항은 적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한은이 외풍을 맞았다 여긴다.
대선이 끝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은은 독자적 스탠스와 무관하게 이런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시장에선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지원해달라는 유무형의 압박이 한은에 쏟아질 수 있다고 관측한다. 4월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신정부 출범 이후 통화 완화 요구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금리의 선제 조정이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연내 금리 동결을 전망하던 이들도 새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향후 통화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한은은 임기 5년에 얽매인 정부의 시선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봐야 한다. 미국이 통화긴축 모드를 강화하고 있는 시점이므로 한은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정부·정치권과 ‘불가근불가원’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은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유의 존재감을 드러내 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