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주파수 경매, 투전판 전락하나

[우리가보는세상]주파수 경매, 투전판 전락하나

성연광 기자
2013.08.22 05:48

좌판에 둘러앉은 3인의 플레이어. 받아든 패 가운데 남들에게 공개할 패를 밑장으로 깐다. 이어 돌아가면서 베팅을 시작한다. 상대방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똑같거나 더 높은 베팅을 해야 한다. 자신의 '히든카드'를 상대방에게 절대 노출하지 않는 것은 위너의 기본 자질이다. 철저한 '포커페이스' 유지도 필수다.

정해진 ‘룰’은‘ 있지만 각종 편법이 난무한다. 사전 거짓소문으로 상대방을 교란하고, 한 플레이어를 견제하기 위해 두 플레이어가 협공하기도 한다. 영원한 동지도 없다. 승리를 위해서는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돼 있다. 판의 규모 역시 장담할 수 없다. 한 수 한 수 간담 서늘한 베팅 속 위너가 되는 길은 최소 비용을 들여 원하는 패를 얻거나, 상대방의 밑천을 최대한 거덜 내는 것이다.

지난 19일부터 이동통신 3사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주파수 경매를 보고 있으면 투전판이 생각난다. 판돈 규모 최소 2조원. 플레이어는 이동통신 3사. 하루 몇백억 수준의 베팅이 오간다. 주파수 투전판과 다를 바 없다. 이러다간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고 함정을 팔 줄 아는 '도박사'에 대한 스카웃 경쟁이 일게 될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회자될 정도다.

주파수 경매제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주파수 경매제는 경쟁수요가 있는 주파수에 대해 경매방식을 의무화함으로써 국가 세수를 늘리고, 사업자들에게도 객관적인 잣대(돈)로 주파수를 배분할 수 있다는 좋은 취지에서 도입한 것이다.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중 상당수가 주파수 경매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주파수 경매가 시행될 때마다 온갖 잡음과 논란이 이는 것일까. 2011년 첫 시행된 1.8㎓ 주파수 경매에서 SK텔레콤과 KT는 1조원에 육박하는 베팅 경쟁을 펼치며 '승자의 저주', '주파수 과열'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역시 2011년에 비해 주파수 경매방식을 많이 개선했다고는 하지만, 할당방식을 정할 때부터 현재까지도 참여기업은 물론 관련 노조, 시민단체, 정치권 등 각종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근본적이 원인은 중장기적인 국가 주파수 배분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주파수 자원이 고갈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게임의 룰’이 공정하다 해도 이동통신사들은 사활을 걸고 '모바일 영토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정책적 목표도 뚜렷하지 않다. '세수 극대화' 혹은 '통신시장 재편'을 노린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노린 것인지 헛갈린다.

하루에 수백억씩 오가는 경매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거북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이런 천문학적 규모의 경매가 휴대전화비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현존 주파수 경매 방식을 비롯한 주파수 할당정책의 전면적인 재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국가 산업 경쟁력을 극대화하는데 최우선 초점을 두고 중장기적이고 일관된 주파수 수급·관리계획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엄연한 국민의 자산이자 유한자산인 주파수는 결코 투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미 시작한 이번 경매는 더 이상 혼탁해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감독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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