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선생 꿈꿨던 산골소년, 신약개발 거목되다

화학선생 꿈꿨던 산골소년, 신약개발 거목되다

김명룡 기자
2016.01.05 03:21

[머투초대석]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은 누구?

/사진=홍봉진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 고향은 충남 서산군 운산면이다. 운산면에서도 산골마을로 꼽히는 원평리 으름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3남3녀 중 막내아들인 그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대전고로 유학(?)을 떠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다.

그가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선택한 것은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교사가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여서 부모님은 사범대를 가서 교사가 되길 원하셨죠. 고등학교 때 화학에 관심이 많아서 선택한 것이 화학교육과였습니다."

막상 대학을 들어가니 화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꼈다. 실용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 교직을 포기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최대 화학기업이었던 유공에서 연구원을 뽑았는데 이 사장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연구 말고 다른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러면 관두겠다'고 그랬더니 떨어지더라고요…(웃음)"

이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고 1984년 운명처럼 병역특례로 한미약품에 입사했다. 당시 한미약품 연구원은 2명에 불과했다. 이 사장은 석사 출신 1호 연구원이었다. 이 사장은 "회사 크기는 상관없었고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을 원해 한미약품으로 갔다"고 말했다.

회사 보일러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쪽잠을 자면서 항생제 연구를 할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다. 6개월의 연구 끝에 2세대 항생제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원가 1500달러의 항생제 원료를 3000달러에 팔 수 있게 되면서 연구개발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체감했죠. 실용적인 연구의 재미를 더 느끼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1989년에는 항생제 '트리악손' 제조기술을 원개발 업체인 스위스 로슈사가 600만달러에 사갔다. 기술수출료가 매년 100만 달러씩 6년간 들어왔는데, 당시 회사 직원 월급을 기술수출료로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이 사장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보냈다. 이 사장을 독일에 유학을 보내준 것도 임 회장이었다. 이 사장은 "일이 재미있고, 사람들이 좋아서 회사를 옮기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며 "연구소를 만들고 신약개발을 하 다보니 한미에서만 32년째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 초대 한미약품 연구소장 직무대행을 맡았을 때 이 사장 나이가 서른다섯이었다. 당시 20명 정도였던 연구원이 이제는 350여명으로 늘었다. 이 사장은 2011년 한미약품 대표가 됐지만 여전히 연구·개발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그가 한미약품 연구개발의 기틀을 다진 '미스터 한미'로 불리는 이유다.

◆이관순 사장은

△1960년 충남 서산 출생 △1978년 대전고 졸업 △1982년 서울대 사범대 화학교육과 졸업 △1989년 KAIST 화학 석·박사 △1996년 한미약품 수석연구원 △1997년 한미약품 연구소장 △2010년 한미약품 R&D본부 사장 △2011년~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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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룡 증권부장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 바이오산업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입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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