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인" 정책으로 가치 회복세…압박 요인 많고 제재 강화돼 추세 꺾인다는 시각 많아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에 가깝게 회복했다. 이에 러시아에 가해지고 있는 경제 제재가 실효성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과 인위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일 뿐 다시 하락할 것이란 주장이 동시에 제기된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루블화는 지난달 7일 최저점을 기록하고 급격한 회복세로 돌아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의 가치를 회복했다. 루블화가 지난달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낸 통화(best-performing currency)'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루블화는 달러당 82루블로,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월 21일 달러당 80루블 선에서 거래되던 것과 비슷하다. 지난달 7일 달러당 139루블로, 기존 대비 40% 이상 가치가 폭락했지만 이후 거의 회복됐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러시아의 경제관리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이끌고 있는) 군 간부들보다 유능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루블화의 반등은 자연스러운 수요·공급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러시아 경제 당국의 필사적인 방어가 만들어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2월 28일 금리를 20% 인상하고, 루블을 달러나 유로가 아닌 루블로 저축하게끔 해 가치 하락 폭을 줄였다. 또 러시아 정부는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80%를 루블로 변환하라고 압박해 루블화 흐름을 만들어냈다. 외국인이 소유한 증권의 매각을 금지하고 러시아인의 해외 송금과 외환대출도 제한했다.
최근에는 서방 국가들에 천연가스 구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국가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함으로써 시장에서 루블화의 위치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등세가 금방 꺾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동맹국과 함께 러시아 제재의 허점은 막고 새로운 제재는 계속 추가하는 중"이라면서 "러시아가 인위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루블화 가치가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 알렉사셴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초대 부총재는 "루블화 가치를 지키고자 외환시장을 폐쇄해뒀지만 언제까지고 루블화를 시장 논리에서 배제시켜 놓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서방 제재로 이미 러시아의 물가가 치솟고 있고 제조분야에선 핵심부품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제인 폴리 네덜란드 라보뱅크의 통화전문가는 "러시아가 외화로 갚아야 하는 부채의 상환이 도래하면 루블화가 다시 압박받을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외국 기업의 자산 매각과 현금 인출이 시작되면 루블화의 가치 추락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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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구리에프 프랑스 시앙스포대학 경제학 교수는 "러시아는 루블화를 반등시켜 경제를 회복하려는 게 아니라, 서방의 제재가 무력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루블화 가치 반등이 러시아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루블화 가치 상승을 들어 대러 제재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서다. 크루그먼 교수는 "러시아의 루블화 방어는 필사적이지만 이게 푸틴 정권의 경제 정책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근거는 결코 아니다"며 "(루블화에 대한 집착은) 러시아 경제 정책에서 판단 미스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