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지난 8일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에 자리한 몰도바. 마이아 산두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CIS(독립국가연합)에서 몰도바가 탈퇴하는 문서에 공식 서명했다. CIS는 옛 소련 구성 국가들 다수가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판 EU(유럽연합)라 할 수 있다. 몰도바는 CIS 창립 멤버이지만 그 위치에서 보듯 친루마니아(친유럽) 성향과 친러 성향이 공존한다. 산두 대통령은 몰도바와 루마니아 통합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친유럽 성향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몰도바의 탈러시아 움직임에 기름을 부었다. 산두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자 탈러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의회 표결을 거쳐 끝내 CIS 탈퇴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처럼 동유럽의 한 나라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쪽으로 한걸음 딛은 순간, 서방 안보의 핵심 보루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거대한 균열을 노출하고 있었다.
그보다 나흘 전은 만 77세가 된 나토의 생일이었다. 나토는 1949년 4월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설립됐다. 그런데 미국이 나토 조약을 재검토하는 걸 넘어 탈퇴도 고려중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가 필요할 때 없더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려면 의회 표결 등 제도적 절차가 필요하므로 현실성은 낮다. 그럼에도 '동맹'을 향해 "서비스에 상응하는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는 '쇼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 식의 접근법을 숨기지 않는다.
![[오데사=AP/뉴시스] 2025년 6월1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열린 제4차 우크라이나-동남유럽 정상회의에서 (왼쪽부터) 니큐쇼르 단 루마니아 대통령,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국기 디자인이 비슷할 정도로 공통점이 있다. 2025.06.12. /사진=민경찬](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4/2026041123563889568_3.jpg)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듯 집단안보체제는 늘 조금씩 변화한다. 나토 또한 1960년대 프랑스의 독자 핵개발을 둘러싸고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프랑스는 1966년 나토 통합사령부에서 철수해버렸고 이 상태는 2009년 프랑스가 복귀하면서 해소된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근본적 위기다.
나토 창설의 주역이자 최대 공여국인 미국 스스로 체제의 유용성을 부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나토 회원국들을 믿지 못하겠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유럽의 비용 분담 확대, 지역내 미군의 재배치 등은 나토가 앞으로 지속되더라도 피할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이는 러시아를 도와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토는 원래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련이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나토는 새로운 존재 이유를 찾으며 확장해 왔다. 동유럽 독립국가들은 얼마 전까지 소련이라는 같은 우산 아래 있었지만 이제는 남남이 된 러시아를 최대 안보위협으로 느끼게 됐다. 이들에게 유일한 길은 서쪽에 있는 또 다른 큰 형, 즉 나토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 '나토는 선(善)이고 러시아는 악(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건 나토가 약해지거나 분열하면 러시아의 팽창을 견제한다는 나토의 존재이유가 흔들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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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다. 분명한 것은 나토 위기의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무상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안보우산'을 제공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 파장은 대서양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중국이 포진해 미국과 또 다른 전선을 긋고 있는 동아시아까지 변화의 파도가 미칠 수 있다. 바로 그곳에 한반도가 있다.
나토 회원국들이 겪는 혼란은 곧 우리의 내일이 될 수 있다. 동맹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쟁점이 된다. 주한미군 주둔군이나 각종 군사장비의 역할 변화 또한 이란전쟁을 계기로 현실화하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확산하는 와중에 한미동맹을 지키고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외교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난제가 우리 앞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