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연구용역' 영업사원 된 연구원

[기자수첩]'연구용역' 영업사원 된 연구원

세종=정진우 기자
2016.08.26 06:20

“연구원의 생명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인데, 정부가 예산을 무기로 연구원을 공공기관처럼 운영합니다. 국가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할 국책연구원이 정부 입맛에 맞는 보고서만 만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 22일 국내 연구원들의 열악한 연구 상황을 지적한 'Sink하는 ThinkTank- 머니투데이 22일자 보도참조 '해외박사 학위받고 딱풀로 영수증 붙이는 연구원' 기사를 내보내자 이 같은 내용의 제보가 쏟아졌다. 국가발전을 위한 연구에 몰두해야 할 인재들이 면피성 연구에 매달리고 있고, 수주영업까지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부세종청사 인근 국책연구단지(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있는 한 국책연구원 소속 A선임 연구원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각 국책연구원은 총 인건비 중 매년 정부에서 60~70%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나머지 30~40%는 연구원이 스스로 충당하고 있다. 정부가 연구원들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1996년에 도입한 ‘연구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d System, PBS)인데, 연구자가 정부나 민간으로부터 연구용역을 수주해 자신의 인건비를 비롯해 기관 운영의 행정비용도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제도 도입 20년 만에 경쟁 촉진이란 취지보다 연구원들을 영업사원처럼 길들이는 정부의 채찍으로 전락했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그는 “연구용역을 수주하지 못하면 월급이 크게 깎인다”며 “국가 전략을 세울 장기 프로젝트보다 영업사원처럼 여기저기 돌며 단기에 끝나면서도 돈이 되는 연구용역 수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제도로 인해 최근 한 국책연구원은 수주 실적이 좋지 않아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할 뻔 했고, 은행 대출을 통해 가까스로 해결했다고 한다.

연구원들이 생계를 위해 각 부처나 기업을 돌며 단기 연구물 수주에 집중할수록 국가 전략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20년이 지난 제도가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연구용역 수주건수가 아니라 양질의 보고서를 생산하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할 ‘싱크탱크’들이 가라 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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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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