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코노미]<중편>한국의 딜레마: 규제와 인프라의 전쟁②

"전 세계적인 전력망 부족 사태, 원인은 재생에너지입니다. 발전소 위치와 소비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새 송전망 건설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한국전력에서 송변전설비 건설을 책임지고 있는 이성학 계통정책기획실장은 단호했다. 그는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 시대의 전력망 건설 당위성을 역설했다. AI(인공지능)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한 탓도 있지만 본질은 '에너지 생산 방식과 장소의 변화'다. 이것이 새로운 전력망 수요를 만들고 있다.
이 실장은 "전후 60여 년간 전력망을 촘촘히 깔아왔기에 더 이상의 대규모 건설은 없을 줄 알았다"고 했다. 오판이었다. 그는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전력망 부족에 시달린다"며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필연적으로 새 길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 결이 다르다. 화석연료가 '중앙집중식'이라면 재생에너지는 '분산형'이다. 대량으로 생산한 전기를 전국적인 전력망을 통해 일방향으로 송배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형태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전력망이 이 같은 방식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지산지소(地産地消)'가 이상적이지만 대규모 전력망은 여전히 필요하다. 지역에서 쓰고 남은 전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효율성을 강조했다. "전기는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해야 합니다. 호남 지역에 재생에너지 발전이 몰린 건 일조량과 바람이 좋고 땅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비처가 문제다. 그는 "수도권 기업과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는 한, 지역 내 전력 전량 소비는 불가능하다"며 "결국 남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망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규모 전력망 건설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난관은 '주민 수용성'이다. 거대한 철탑과 고압전선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준다. 주민들은 전자파가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고 믿는다.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는 한국 사회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주민들은 생존권을 걸고 반대했다.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졌다. 공권력 투입으로 사태는 봉합됐지만 송전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고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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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한전에 따르면 345kV 송전선망 건설의 표준 사업기간은 9년이다. 사업착수부터 부지선정, 인허가, 착공, 준공까지 실제로는 평균 13년이 걸린다. 주민 반대로 3~4년씩 허송세월하는 셈이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가 대표적이다. 2003년 시작해 21년 만인 지난 4월에야 끝났다. 지연 기간만 12년 6개월이다. 입지 선정에 6년, 각종 인허가 불허와 소송전이 이어졌다. 당진TP-신송산은 90개월, 신장성-신정읍 변전소는 77개월 늦어졌다.
반대의 핵심은 재산권과 건강권이다. 재산권 문제는 최근 국가기간 전력망 특별법 시행으로 보상이 강화되며 다소 잦아들었다
남은 건 전자파 공포다. 이 실장은 "과학적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휴대폰이나 블루투스, 와이파이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더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력설비 전자파 유해성 논란은 이미 국제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다. 전력설비에 관한 전자파 논란은 1979년 미국 덴버 연구가 "송전선로 주변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높다"고 주장하며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후속 연구에서 표본 오류가 밝혀졌고 WHO(세계보건기구) 주관 국제연구에서도 '인과관계 없음'으로 결론 났다.
이 실장은 "국제암연구소의 발암물질 등급에서는 1급이 술, 담배, 가공육 등"이라며 "전력설비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자계, 무선 주파수(RF)는 발암 근거가 제한적인 2등급B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전탑 바로 밑에서도 자기장의 세기는 1~2µT(마이크로테슬라)에 불과하다"며 "이는 국제기준인 200µT의 200분의 1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오해와 편견을 안타까워했다. 해법은 인식 전환과 확실한 보상이다. "과거처럼 싼값에 주민 희생을 강요하며 전력망을 깔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합당한 보상과 지원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적기에 전력망을 건설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