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레인지는 국내 주방문화를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는 대표 생활가전이다. 실내 공기오염을 최소화해 건강에 이롭다는 전기레인지의 마케팅 콘셉트는 '웰빙'과 '친환경'을 중시하는 최신 소비 트렌드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빠르게 세를 확대해나간 전기레인지는 국내 조리기기 시장의 독보적 존재였던 가스레인지를 위협하는 경쟁제품으로 훌쩍 컸다.
시장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초기 시장 규모를 함께 키워나가던 '어제의 동지'는 어느 순간 '오늘의 적'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연구개발을 통한 품질개선 노력으로 업계 발전을 고민하기보다 순위 경쟁에 골몰하며 상대를 헐뜯고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이 구역의 최고는 바로 나'라며 서로가 시장점유율 1등을 주장하고 나섰다.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집계한 수치가 그 나름의 증거였다. 업계 선두 자리를 놓고 최근 치열한, 동시에 치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생활가전기업 SK매직과 쿠첸의 얘기다.
동종 업체들간 이같은 신경전은 비단 생활가전업계만의 사례는 아니다. 광고를 통한 비방전까지 서슴지 않았던 건축·인테리어 자재 업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중반, 폴리염화비닐(PVC) 창호를 비방하는 내용의 광고를 언론매체에 게재한 알루미늄 창호 업계가 '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은 일화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루 회자된다. 3년 전, KCC가 경쟁사 LG하우시스의 브랜드명 '지인'을 활용한 언어유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광고를 내보내 방송정지 처분을 받은 것 역시 손꼽히는 촌극이다.
누구나 앞에서는 공정경쟁을 말한다. 하지만 뒤로 돌아서면 온갖 비난과 비방으로 상대의 등에 비수를 꽂는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가치는 관련 업계와 시장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커 나갈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라고 무조건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니라 업계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로 여기는 자세가 중요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활력을 잃은 업계에서 나홀로 존재하는 기업의 미래가 장미 빛 일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