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발표 후 15년간 국가 전력 설계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가 불과 넉 달 전 공개한 수요 전망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제4차 토론회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오늘이 사실상 12차 전기본 수립을 위한 첫번째 토론회와 같은 성격이 있다"고 한 배경이다.
같은 날 열린 제5차 토론회에서 전기본 위원회가 공개한 2040년 목표 최대전력은 4월 잠정안보다 26.6∼26.8기가와트(GW) 늘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전력수요가 20.6GW,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가 7.9GW 늘었고 강화된 수요관리 등이 일부를 상쇄했다. 국가 산업 경쟁력을 위한 수요라면 전력계획도 바뀔 수 있다. 다만 짚어야 할게 있다.
우선 AIDC를 많이 짓는 것이 곧 국가 AI의 경쟁력으로 볼 수 있을가. 반도체 공장은 국내 기업이 제품을 생산·수출하는 제조기지다. 반면 AIDC는 국내에 서버가 놓인다고 연산 자원 통제권까지 생기지 않는다. 누가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운영하며 국내 기업·연구자가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데이터·모델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중요하다. 해외 기업 AI 모델을 위한 연산 공간 제공에 그친다면 핵심 부가가치의 상당부분이 해외에 남는다는 얘기다.
누가 비용과 위험을 부담할지도 따져야 한다. 전기본 위원회가 AIDC 사업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계약전력 기준 20.8GW 규모의 기업 투자계획 가운데 1단계 10.8GW만 수요 산정에 반영하고, 나머지 10GW를 차기 전기본 검토 대상으로 넘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AIDC 수요에 맞춰 확충한 전력 인프라의 좌초자산화를 막을 제도, 한정된 전력망에서 실현가능성이 낮은 '허수신청'을 걸러내고 증설한 인프라 비용이 다른 전기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불확실한 전력수요가 화석연료 발전 확대의 명분이 돼서는 안 된다. 전기본에 반영된 수요는 결국 발전설비 확충의 근거가 된다. 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을 늘리면 탄소 배출 비용은 미래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메가프로젝트는 국토 전역을 산업 성장의 새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그 취지라면 미래 세대에 더 큰 기회를 남겨야지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이 전력수요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당 가능한지, 그 비용까지 감수할 만큼 산업적 가치가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국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