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연구 끝 탄생한 '미호'…개발자 초청해 연구에 얽힌 사연도 나눠
-오는 9월엔 '해담'…소비자가 품종 보고 농산물 고르는 문화도 만든다

밥 한 공기를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밥 한 공기에 오를 새로운 쌀 품종 하나를 만드는 데는 때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농촌진흥청의 구내식당 밥상이 조금 특별해졌다. 매달 하나의 쌀 품종을 정해 한 달 동안 밥을 짓고, 그 품종을 개발한 연구자를 식탁의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첫 주자는 8월의 쌀 '미호'다.
'미호'는 쌀 미(米)에 좋을 호(好), 말 그대로 '모두가 좋아하는 쌀'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초기 특성검정이 이뤄진 청주지역 미호천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미호천 유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소로리 볍씨'가 발견된 곳이라는 점이다. 한 품종의 이름 안에 우리 벼농사의 오랜 시간이 겹쳐 있는 셈이다.
미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11년이 걸렸다. 중간 정도의 찰기를 가진 쌀로 찹쌀을 섞지 않아도 부드럽고 찰진 식감을 내며, 따로 불리지 않고 바로 밥을 지어도 맛이 좋다는 게 특징이다.
냉장·냉동 보관한 뒤 다시 데워도 밥알의 형태와 식감이 잘 유지돼 도시락이나 단체급식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농진청이 이번 시도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쌀의 맛과 기능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이승돈 청장과 '미호'를 개발한 국립식량과학원 강주원 박사팀이 한자리에 앉아 자신들이 개발한 쌀로 지은 밥을 함께 먹었다.
오랜 시간 논과 시험포, 연구실을 오가며 품종 하나에 매달려 온 연구자들에게는 조금 특별한 식사였다.

우리가 마트에서 쌀 한 봉지를 고를 때 흔히 보는 것은 생산지와 브랜드다. 그 쌀이 어떤 품종인지,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어졌는지까지 생각하는 소비자는 아직 많지 않다.
방혜선 농진청 연구정책국장도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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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소비자들이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을 고를 때 품종을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듯, 우리 농산물 시장도 이제는 '품종을 보고 고르는 소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품종을 알게 되면 그 뒤에 있는 사람도 보인다. 맛과 수량, 병해충 저항성 하나를 개선하기 위해 수없이 교배하고 심고 거두기를 반복한 연구자들의 시간도 비로소 가치를 얻는다.
그래서 농진청 구내식당의 작은 변화는 단순한 '메뉴 변경'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연구성과를 보고서나 전시장에서 설명하는 대신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으로 경험하게 하는 실험이다. 연구와 국민의 거리를 가장 익숙한 공간인 식탁에서 좁혀보겠다는 것이다.

8월 '미호'에 이어 9월에는 '해담'이 구내식당 밥상에 오른다. 또 다른 이름, 또 다른 맛,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연구자의 이야기가 한 달 동안 밥상에서 이어진다.
쌀 한 톨에는 농부의 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알의 씨앗을 더 좋은 품종으로 만들기 위해 수년, 때로는 십수 년을 기다린 연구자의 시간도 함께 들어 있다.
농진청의 '한 달, 한 품종' 실험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농진청 식구들에게 밥을 먹는 다는 건 우리 농업과 과학자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 작은 실험이 농진청 구내식당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 구내식당에서도 한 달에 한 품종씩 우리 쌀을 맛보고 그 쌀을 만든 연구자와 농업인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면 어떨까.
대통령의 밥상에 오른 쌀 한 공기가 각 부처 장관과 공직자의 밥상으로, 다시 국민의 식탁으로 이어진다면 그 자체로 우리 농업과 농업과학을 알리는 살아 있는 홍보가 될 수 있다.
품종을 이름으로 기억하고, 그 품종을 만든 사람을 함께 기억하는 문화. 농진청 구내식당에서 시작된 '맛있는 실험'이 대한민국 곳곳의 밥상으로 번져가길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은 거창한 정책 구호보다, 오늘 어떤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