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3% 룰이 자본시장의 판도를 바꿨나

[유효상 칼럼] 왜 3% 룰이 자본시장의 판도를 바꿨나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9.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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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2024년 9월,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과 손잡고 주당 66만 원에서 시작해 83만 원까지 매수가를 올리는 적대적 공개매수를 전격 감행하면서, 대한민국 산업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74년 동업 신화는 파국을 맞이했다. 수조 원대의 자본이 난무하는 적대적 M&A가 시작되자 자본시장의 관심은 오직 하나의 숫자, 즉 양측이 확보한 총지분율로 몰렸다. MBK·영풍 연합이 약 41.1%의 지분을 끌어모으며 약 37.9%를 확보한 최윤범 회장 측을 수치상으로 앞서 나가자 경영권을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실제로 최 회장 측은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대항 공개매수를 감행하고 2.5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철회하는 등 사력을 다해 수조 원대의 '쩐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결과는 시장의 예상을 깼다. 그간의 주주총회에서 MBK·영풍 측이 추진한 이사회 장악 시도는 무산되었으며, 경영권 방어 표 대결에서 최 회장 측이 연이어 승리했다. 숫자의 우위가 곧 경영권 장악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판단은 지배구조 규제의 틈새에 숨어 있던 특수한 금융공학 메커니즘 앞에서 산산조각 난 것이다. 그 균열의 중심에 '3% 룰'이 자리했다.

상법상 3% 룰은 감사위원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발행주식총수의 최대 3%로 엄격히 제한하는 대주주 캡(Cap) 제도다. 일반 이사들과 달리 감사위원은 주주총회 단계에서부터 분리하여 따로 뽑게 되어 있어, 이때 강력하게 작동하는 3% 룰이 대주주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제도는 원래 거대 대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였으나, 이번 적대적 M&A에서는 공수의 향방을 뒤바꿔 놓는 치명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수조 원을 투입해 41.1%라는 거대한 지분율을 확보한 MBK·영풍 연합은 단일 대주주 그룹으로 묶이는 바람에 3% 룰 적용 표결에서 38% 이상의 의결권이 무력화되며 한순간에 3%라는 미미한 영향력으로 떨어져 버렸다.

반면 수치상 열세에 몰려 있던 최 회장 측의 의결권은 전혀 다르게 작동했다. 최 회장 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은 캡에 걸려 3%로 제한되지만,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현대차그룹, 한화, LG화학 등 우호 세력들이 각기 독립된 형태로 지분을 분산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별 주주 자격으로 각각 최대 3%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판세를 뒤집는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최 회장 측은 자체 3%에 더해 현대차·한화·LG화학 등 우호 기업들이 각자 독립 3%씩을 추가로 행사하여 실질 의결권을 9~12%대까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단순 지분율 3.2%p 차이가 3% 룰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도리어 약 7~9%p 이상의 실질 의결권 격차로 역전된 것이다.

3% 룰의 파괴력은 '특수관계인' 판단 기준에서 비롯된다. 상법과 시행령은 감사위원 선임·해임 표결에서 최대주주와 그의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되, 최대주주가 아닌 주주는 설사 유사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더라도 각자 독립적으로 최대 3%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MBK와 영풍은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약정한 '공동보유자'인 반면, 우호 기업들은 최 회장 측과 지분 협력 관계일 뿐 법적으로는 독립된 개별 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지위상의 차이가 지분율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갈림길이 됐다.

이러한 지배구조적 특성은 자본시장에서 '숫자의 폭력'이 언제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 수조 원의 자금력을 동원한 적대적 M&A라 할지라도 법적 룰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지분 구조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순간 전체 유효 의결권 수가 급감하면서,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가 보유한 1표의 실질 가치가 수 배로 튀어 오르는 '의결권 증폭 현상'이 벌어진다. 자연스럽게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표심이 경영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절대적 스윙보터(Swing Voter)로 격상되는 것이다. 자본의 크기가 아닌, 주주 가치와 명분이 승패의 열쇠를 쥐게 된 것이다.

3% 룰이 경영권 분쟁의 승부를 뒤흔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 룰의 원조 격인 '개별 3% 룰' 아래서도 2020년 한진칼 경영권 분쟁 당시 이미 대주주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대폭 깎이는 현상이 있었다. 다만 당시엔 특수관계인 지분을 각자 3%까지 개별 인정했다. 반면 2025년 7월 상법 개정으로 '합산 3% 룰'은 이를 하나로 묶어 단 3%로 제한됐다. 최대주주 측 의결권이 원천적으로 줄어드는 구조인 만큼, 고려아연 사태의 파괴력은 한층 더 커졌다. 시장 참여자들이 이번 사태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지분 격차(3.2%p)와 실질 의결권 역전 폭이 역대 최대 수준이라는 점, 그리고 그 배후에 반도체·이차전지 공급망의 핵심 소재인 아연·니켈 제련 기술이라는 국가기간산업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점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경영권 분쟁 속, 다가오는 9월 9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고조되는 분위기는 이러한 3% 룰의 파급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측은 사임한 이사의 후임 선임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안건을 두고 사력을 다해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ISS, 서스틴베스트, PIRC, 이건존스 등 국내외 4대 주요 의결권 자문사가 모두 전문성과 회계 독립성을 이유로 고려아연 측 감사위원 후보에 대해 찬성을, MBK·영풍 측이 추천한 후보에 대해서는 반대를 권고하면서, 표 대결이 고려아연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MBK·영풍 측은 과거 투자 건을 둘러싼 사익 편취 의혹 제기와 가처분 소송 등 법적 공방으로 맞불을 놓으며 전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만약 이 흐름이 이어져 고려아연 측이 감사위원 자리를 방어하고 독립이사 4석 중 2석씩 나눠 갖는다면 이사회는 팽팽한 분점 구도로 재편된다. 지분율 41.1% 대 37.9% 구도 속에서 정기주총마다 반복될 표 대결을 감당해야 하는 MBK·영풍 연합은 수조 원에 달하는 출자 이자 및 금융 비용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최 회장 측 역시 우호 기업들이 개별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독립 주주인 만큼 실질 의결권 우위가 잠정적 균형에 불과하다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이번 사태는 3% 룰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내며 법 개정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실질적 우호 관계에 있는 기업들에 지분을 분산 배치하는 '우호지분 쪼개기'나 '파킹(Parking) 지분' 기법을 활용할 경우 대주주 캡 규제가 무력화될 수 있어, 제도가 취지와 달리 지배구조 우회 기술로 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특수관계인 판단 기준을 실질적 의사 합치 여부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전망이다.

'왜 3% 룰이 자본시장의 판도를 바꿨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자본의 사냥터로 변모한 한국 증시에서 국가기간산업의 기술 가치와 장기적 성장성을 지켜내는 법적 방어막이자 막강한 금융 무기로 재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압도적 지분을 확보하고도 고전하는 MBK·영풍의 사례는 사모펀드들에게 지분 매집 이전에 지배구조 규제부터 정밀 분석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결국 3% 룰이 바꾼 자본시장의 판도는, 수조 원의 자금력이 지배하는 냉혹한 정글 속에서도 법적 메커니즘과 주주 가치라는 명분이 명확한 견제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해 냈다. 다가오는 표 대결의 결말이 어디로 향하든, 고려아연 사태는 한국 자본시장에 '실질 의결권의 정치학'을 각인시킨 결정적 이정표이자, 단기 자본의 공격에 맞서 국가기간산업의 본질적 가치와 지배구조의 정교함을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숙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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