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시티' 주민의 보호주의 판결.."동네식구 감싸기"

'애플시티' 주민의 보호주의 판결.."동네식구 감싸기"

오동희 기자
2012.08.27 07:41

정서법 통한 무역장벽화 우려..일부 네티즌 "삼성, 미국 투자 취소하라" 주장도

#1984년 LA 올림픽에서 라이트웰터급의 김동길은 8강전에서 미국의 제리 페이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미국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과 홈그라운드의 이점으로 제리 페이지는 김동길에게 4-1로 승리했다.

또 라이트급의 전칠성도 준결승에서 미국의 페널 휘태커에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0-5'라는 편파적인 판정으로 패해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미국 내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미국 시민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힘입은 결과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삼성이 애플과의 특허 소송의 링 위에 올랐다가 지난 24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심판과 관중들에 의해 판정패 당했다. 이번 미국 배심원 평결은 자국 산업보호를 위한 '미국 애국주의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법원이 삼성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차치하고라도 중립적인 네덜란드나 영국 법원이 디자인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던 판결과도 배치되는 자국 이기주의적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판결은 보호무역주의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애플 승소 이끈 美 정서법의 무역장벽화=미국은 실업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8.3%로 전월보다 소폭 상승했다. 외국기업들이 미국 내 일자리를 모두 빼앗고 있다는 정서도 확산돼 있다. 실업으로 고민하고 있는 미국 내에서 미국기업과 한국 기업의 소송에 심판으로 나선 '애플 시티' 시민들의 정서는 삼성과 애플 소송의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했다는 반응이다.

미국 IT 전문매체 씨넷은 "당초 삼성이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며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은 애플 본사에서 불과 10마일(16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애플의 홈그라운드이고, 배심원들도 대부분 실리콘밸리와 관련된 출신이었다"고 지적했다.

심판과 관중이 자국 기업인 애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게 미국 내외의 분석이다. 하지만 통신특허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서 비전문가들의 판단만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향후 미국 내 정서법에 의한 무역장벽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부에서 미국 기업과 소송을 하는 외국 기업들은 전문가가 아닌 애국심 가득한 미국 시민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이런 판단에서 대부분은 외국기업은 패소해 미국의 무역장벽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확산되는 자국 기업 보호무역주의=미국 상무부가 최근 위기에 처한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주장을 받아들여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산 세탁기에 최고 82%의 관세를 부과하는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또 미국 법무부는 삼성SDI와 LG화학에 대해 2차 전지 담합조사를 진행 중이다. 자국 내 기업들을 살리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006년에는 미국 D램 업체 마이크론을 살리기 위해 국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반덤핑 혐의로 피소해 과징금과 징역형을 내리기도 한 바 있다.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내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 아르노 몽테부르그 산업장관은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들이 덤핑으로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다며 반덤핑 조사를 EU요청했다. 자국 브랜드인 푸조와 르노 등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 현대차와 기아차 때문이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이처럼 자국 내 기업의 어려움이 국민 정서를 자극해 자유무역주의 시대에 역행하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일환이 애플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 내 배심원들의 정서적 판결이라는 얘기다.

◇네티즌들, "삼성, 미국 내 투자 철회하라"=미국 내 자국 기업 보호주의적 색채가 강한 판결이 나오자 국내 일부 네티즌들은 사이에서는 미국 중심적인 평결에 대한 반발로 "삼성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던 것을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애플에 공급하는 부품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삼성은 최근 미국 오스틴 공장에 40억달러를 투자키로 하는 한편, 실리콘밸리에 R&D센터 등을 확장하기로 한 바 있다. 또 애플에 공급되는 핵심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은 애플이 고객선을 바꾸려 시도하고 있지만 삼성만한 대안을 찾지 못해 계속 공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판결로 일부 네티즌들은 이같은 조치를 취하라는 것. 하지만 삼성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한편, 업계 관계자는 "각국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자국 기업보호를 위해 반덤핑이나 특허소송 등에서 자국 기업 지키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기업 족쇄 채우기에 나서고 있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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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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