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이 시작됐지만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상황이 지속된다. 제6공화국 헌법의 수명이 다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이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본적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는 1973년 미국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가 그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등장했다. 슐레진저는 냉전 시기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점차 확대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으면서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의 독주가 민주주의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슐레진저가 지적한 제왕적 대통령의 특징은 외교와 군사분야에서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이 확대되고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우회하는 행정명령이 과다사용되는 것이었다.아울러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행정부의 비밀주의 강화, 전쟁선포권 등 의회의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 등도 특징으로 지적됐다.
슐레진저가 고안한 제왕적 대통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상당부분 다르다. 그는 의회의 전쟁선포권을 우회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현상을 비판했는데 우리의 경우 이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더해 슐레진저는 연방제라는 통치구조 속에서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수평적 권한배분이 훼손돼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우리의 경우 미국과 달리 중앙집권적 체제며 대다수 국민은 지방자치단체로의 권력분산과 이양에 부정적이다. 미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기존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우회하거나 침해하면서 발생한 현상에 대한 비판이라면 우리의 경우 처음부터 헌법 등 제도설계 자체가 대통령에게 권한을 과도하게 집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은 인사권 집중과 더불어 대통령과 여당의 수직적 관계에 집중된다. 주요 권력기관장을 비롯한 고위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는 현재의 각종 시스템과 체계는 1987년 6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만들어졌다. 1987년 체제로 불리는 현재 체제는 당시 기득권인 군부와 미래권력을 갈구한 3김의 타협으로 등장했다. 카리스마적인 정치지도자들의 존재를 전제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이제는 그런 주체들이 사라진 상태에서 틀만 남아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고 문제해결보다 갈등증폭과 교착상태 지속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상황이 달라졌음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권위주의와 민주화운동의 대립과정에서 등장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치인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인사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승자가 무조건 독식해서도 안되며 신속한 인사가 이뤄질 수 있는 권한 역시 보장돼야 한다. 비판은 쉽지만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정치적 위기상황은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근간이 훼손된 상태에서 제도에 대한 기계적 이해와 해석에 기반한 권한행사가 반복된 끝에 나타난 파국이라고 볼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과 변화 이전에 정치의 복원이 우선돼야 할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