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도, 한국 기업도 울고 가는 'K-규제감옥'

K팝 아이돌도, 한국 기업도 울고 가는 'K-규제감옥'

오동희 기자
2025.02.26 12:00

[오동희의 사견(思見)]

실내 2만명, 실외 4만명 등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도 고양에 건설 예정이었던 CJ라이브시티 아레아 조감도/사진=경기도
실내 2만명, 실외 4만명 등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도 고양에 건설 예정이었던 CJ라이브시티 아레아 조감도/사진=경기도

한국에 주재하는 외신 기자들 관심 키워드는 'BTS(방탄소년단)', '삼성전자', 그리고 '북한(North Korea)' 세가지다. 이를 제외하면 웬만한 국내 뉴스는 외국 언론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북한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관점에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투자적 관점에서, BTS는 K컬처의 대표 문화 상품의 관점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이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BTS와 삼성전자가 정작 국내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을까?

BTS의 팬클럽 '아미'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명(유튜브 회원 8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BTS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런데 한국에는 BTS가 제대로 공연할 만한 K팝 전용 공연장이 없다. 현실적으로 축구장이나 종합경기장을 빌려 쓰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스포츠 시즌 중이면 대관조차 어렵다.

CJ ENM이 경기도와 함께 고양에 2015년부터 추진했던 'K-컬처밸리'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실내 2만 명(실외 4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10만평 규모의 전용 공연장을 포함한 이 사업은 BTS를 비롯한 K팝 아이돌들의 글로벌 팬들을 유치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이 사업은 근 10년간 끌다가 지난해 잠정 중단됐다. 지자체는 시행사의 사업의지 부족이라며 협약을 해지했지만 사업시행사는 '행정의 감옥'에 갇혀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원은 박하고, 인허가를 받는 데만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공연장 문제를 넘어 국가적 전략 부재의 사례다. K팝 공연이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관광산업, 항공산업, 숙박업,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BTS 등 아이돌들이 공연을 하면 전 세계 팬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이는 항공·호텔·리조트·쇼핑 등 다양한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들의 글로벌 인지도와 친밀도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행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오히려 전용 공연장이 늘려있는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대관하고 있다. 규제의 덫이 발목을 잡은 결과다. 오는 4월 재공고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하는데 이제는 사업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이런 문제는 공연 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논란이 된 상법 개정안이다. 이사의 책임 범위를 주주까지로 대폭 확대하는 이 법안은 결국 기업 경영진을 위축시키고, 주주들의 소송 남발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해외 경쟁국들은 기업 경영 환경을 유연하게 만들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또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고소득 엔지니어들의 주 52시간 근무 규제 역시 그렇다. 미국과 일본 등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근로자의 근무시간 예외 규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번 반도체특별법에도 이를 담아내지 못했다. 정치권의 산업 현실에 대한 인식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의 업무 연속성이 중요하다. 고소득자들과 일반 근로자들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근로시간 제한은 경쟁력만 갉아먹는 규제다.

과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을 했다고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 비판이 아니라, 행정규제의 감옥에 갇힌 기업의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수백~수천 개의 인허가 도장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는 ' 텐포원(10 for 1) 규제 원칙'을 도입했다. 새로운 규제를 하나 만들면 기존 규제 10개를 없애야 한다는 것으로 트럼프 1기에서 내세운 투포원(2 for 1)의 확장판이다. 이는 기업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보장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규제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규제가 늘면 이를 관리·감독할 공무원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를 혁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기업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가 경쟁력도 강화된다. 규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네거티브 규제'로의 급진적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이 세계적인 K컬처 강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이 없다면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핵심 산업들도 규제의 덫에 갇혀 있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제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규제개혁이 실패하면 기업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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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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