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찾았다. 손학규 대표를 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에 대한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황 원내대표는 손 대표 측에서 "사전 약속이 없었고, 기자회견 준비 등으로 바쁘다"며 면담을 거부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민주당 대표실에 전화를 걸어 손 대표 면담 일정을 잡았는데, 민주당 대표실 측이 전화가 걸려온 곳을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잘못 알아들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더 이상 여야간 대화를 통한 해법 도출이 쉽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손 대표 등 민주당 최고위원단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달 말까지 '민주진보통합정당 추진기구' 구성을 완료하고 다음 달 말까지 통합전당대회를 치르는 내용의 야권 통합 로드맵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통합 일정까지 제시한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과의 정책 공조가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지도부가 한·미 FTA 비준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민노당과의 공조를 깨고 비준안 처리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손 대표는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야 5당 대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시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연석회의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 통과시키려고 한다면 저희는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권에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 수 있는 데다 이를 계기로 야권의 결집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과거 탄핵 상황과 같은 연출을 함으로써, 한·미 FTA 문제를 총선용으로 악용하려고 하는 민주당의 저의는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는 강경 대응 노선에 대한 이견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5선 의원을 지내고 2003년 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정대철 상임고문은 성명을 내고 "야권은 당당히 표결에 나서야 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역사와 선거를 통한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촉구했다. 정 고문은 "국회는 더 이상 물리력을 동원한 저지와 몸싸움으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에는 한·미FTA 조건부 찬성론자인 송민순 의원이 외통위에서 농림수산식품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겼다. 송 의원은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여야 대치 상황에 대해 "얘기할 게 없다. 이렇게밖에 말을 못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