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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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만 47세라는 나이에 2300 명을 거느리는 증권사 사장이 됐다. 역대 국내 증권사 가운데 최연소 최고경영책임자(CEO)다. 유 사장은 1988년 대우증권 국제부에 입사한 뒤 20년 가까이 국제업무를 담당해왔다. 대우증권 시절 런던법인 부사장과 메리츠증권 전략영업본부장을 거친 '국제통'이다. 2002년 10월 동원증권 도매 및 IB본부장으로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 출신으로 고려고등학교와 연세대 경영학과, 오하이오 주립대학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유 사장은 뛰어난 글로벌 감각으로 5년 간의 철저한 준비 끝에 지난 2005년 본격적으로 베트남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베트남펀드 열풍'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인 셈이다. 해외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탁월한 눈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베트남투자청, 베트콤뱅크증권, 국태군안증권 등 해외 금융기관과 잇따른 업무 제휴를 맺고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진출에
훤칠한 키의 신사가 들어온다.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치곤 너무 젊다. 당당한 '에너지'를 뿌리며 성큼 앞으로 다가선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사진)은 지난 3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증권(옛 동원증권)에 온지 4년 반만이다. "인생을 스타카토로 살아라." 그의 철학이다. "골치 아픈 것을 질질 끌지 말고 딱딱 끊어주면서 살자는 얘기입니다. 주말엔 업무에 관한 건 다 잊어버리고 머리속을 비우는 훈련을 많이 했지요. 근데 사장이 되고 나니 아무래도 그게 잘 안됩니다. 꿈에서도 일 생각을 할 정도예요." 요즘 그의 머리속은 복잡하다. 유 사장은 "취임초라 공식적인 일이 많고 회계년도 기말기초라 몸이 너무 힘들다"며 "1년쯤 지나면 CEO 엔돌핀이 돌아 좋아진다는데 언제쯤 그렇게 될까 싶다"며 웃었다. 그는 첩첩산중 속에 놓여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은 그중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거산(巨山)일 것이다. 해외진출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그가 던진 화두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이 농업을 무기로 우리를 압박해 왔다면 유럽연합(EU)은 한국에 월등히 앞서는 환경을 가지고 공격할 것입니다." 한·미 FTA 후속 대책을 놓고 공방이 한창인 가운데 이치범 환경부 장관은 한·EU FTA에 대한 걱정과 함께 철저한 대응을 강조했다. EU의 환경규제에 효과적으로 준비하지 못하면 국내 주력 수출길이 막히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국내 최대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을 5년여 맡은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환경정책에 관해서는 소신과 신념이 확고하고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국환경자원공사 사장 때는 환경부 산하기관에 분산돼 있던 폐기물 관련 업무를 공사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각종 환경 현안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논란을 놓고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맞장토론'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확인
"벤처기업협회가 기술경영의 심장이 되게 하겠습니다. 벤처 2세대가 가는 길을 지켜봐주십시오." 백종진 한글과 컴퓨터 회장이 벤처 '세대교체론'을 외치며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을 넘었다. 구심점이 취약한 벤처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공약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벤처기업협회는 한국 벤처기업의 성장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벤처의 범주가 확장되면서 다양한 산업별ㆍ지역별 협의체들이 생기고, 벤처 관련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됨에 따라 협회의 역할은 점점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벤처산업의 신화 재현을 위해 총대를 맨 백종진 회장을 만나봤다. - 지난 2월 협회장 취임사에서 벤처 펀드 500억원을 결성하겠다고 했는데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협회장직 임기 내에 500억원의 벤처 펀드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빨리 실행돼 4~5월 안에는 가시화 될 듯 합니다. 연기금 300억원, 은행권 100억원 등 400억원의 자금이 이미 모집된 상황입니다. 또 50억
김하중 동부저축은행장은 온화하지만 강인한 리더십을 갖춘 덕장으로 동부그룹뿐 아니라 저축은행업계에서도 신망이 높다. 1997년 동부저축은행에 취임한 이래 전문경영인으로는 이례적으로 11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장수비결은 김 행장이 CEO들이 함몰되기 쉬운 단기 경영성과보다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당장 성과를 내야 살아남는 CEO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가져온 '금융인으로 정도를 밟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배경이었다. 1967년 김 행장은 한일은행에서 근무했는데, 패기와 열정이 가득해 은행의 보수적인 성향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다. 불만이 쌓여있던 어느날 직장 선배집에서 돼지고기 빈대떡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자연스레 직장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고, 선배에게서 여러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은행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라. 은행원으로서 삶을 가고 싶으면 '여치는 이슬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
"인재육성을 위해 시중은행을 훨씬 능가하는 교육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직원 39%가 금융부문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 말까지 전직원 100%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동부저축은행은 업계 최고의 건전성을 보유한 곳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보다 주목할 점은 임직원들의 기본자질이 시중은행 못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인재(人材)로 씨를 뿌려 미래를 거두겠다"는 김하중 동부저축은행장(사진)의 경영철학에 따라 수년간 질적 향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 행장은 사내 어느 부서에서 올리는 교육비 지출품의도 거절한 적이 없을 정도다. 동부저축은행이 직원 1명에게 지출하는 교육비는 연간 1300만원. 이는 금융권 최고 수준이다. 순이익 대비 교육비 투자비율은 업계 평균보다 14배나 높다. 특히 금융자산관리사(FP) 공인회계사(CPA) 등 공인자격증이 없으면 승진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돼 있어 자질 향상은 동부저축 은행원들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올해 말이면 동부저축은행은 2004
"금융업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이트레이드 증권에 남은 청춘 모두를 바칠 계획입니다" 금융업 경력만 23년째를 맞은 양장원 이트레이드증권 사장. 그는 한국은행 국제금융부에서 주니어 이코노미스트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어 신한은행 국제부와 런던지점, 본점에서 금융부, 자금부, 투자은행부에서 11년간 근무했다. 이트레이드와 인연을 맺게 된 건 2007년 소프트뱅크 파이낸스 코리아에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4년간 활동한 후 2004년 6월 합류, 12월부터 이트레이드증권의 경영총괄을 맡고 있다. 쉬지않고 계속되는 업무 속에서도 자기계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한국은행 근무당시 대학원 석사를 바쳤고, 신한은행 본점 근무당시에는 헬싱키 경영대학원(HESEBA)에서 MBA를 마쳤다. 직원들에게도 이같은 열정을 적극 설파하고 있다. '증권사는 서비스업.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그의 철학은 직원들에게 끊임없는 교육을 주문하고 있다. "경영철학은 Creativity(
"해외펀드,구조화 채권 등 특화된 상품을 온라인으로 공급, 2년안에 5만원 주가의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코스닥 상장 1개월째를 맞은 양정원 이트레이드 증권 사장의 포부다. 취임한지는 4개월이 조금 넘었지만, 양 사장의 업무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지난 2004년 6월 이트레이드증권에 합류한 이후로 줄곧 이트레이드 부활을 위한 총괄업무를 맡아왔다. 코스닥 상장은 양 사장이 부활의 돌파구로 삼기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왔던 프로젝트 중 하나. 상장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한번 높이고, 온라인 증권사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이미 탄환은 준비됐다. 이트레이드 증권의 온라인 HTS '씽'(Xing)이 그것이다. 상장한 자금으로 새로운 실탄을 구축하기보다는 '씽'에 가능한 가장 강력한 서비스를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미국·일본 등 10개국과의 네트워크, 온라인 증권사만의 유연한 서비스와 가격 경쟁력을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현재 이트레이드증권 고객은 일본증시
"뜻 깊은 상을 연달아 받아 직원 모두가 고무돼 있습니다. 그동안 주력했던 지배구조와 재무구조 개선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아 기쁩니다." GS건설에 상복이 터졌다. 지난해 12월 한국CFO협회로부터 '재무혁신기업대상'을 받은데 이어 올해 2월엔 아시아 금융전문지인 '아시아머니'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경영기업'으로 뽑힌 것. GS건설 허명수 최고재무관리자(CFO) 겸 대표이사 사장(51)은 한국CFO협회가 주관하는 '2006CFO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GS건설은 또 지난 5일 납세자의 날 최고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아 업계 화제가 되고 있다. 고분양가 책정 논란 등으로 일부 건설사들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는 가운데 수상한 것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GS건설의 실적 상승세도 주목할 만하다. 2004년 '시공능력평가(매년 건설업체의 시공실적, 경영상태, 기술능력 및 신인도를 기초로 시공능력을 평가·공시하는 제도)'에서 6위였던 GS건설은 2005
'지칠 줄 모르는 엔진.' 도전과 실천을 중시하는 현대엔지니어링 김중겸 사장의 칭호는 많다. 과거 국내·외 현장을 누비며 일감을 따낼 때는 '협상 전문가'로 통했고, 업계 주택분야 좌장 역할을 하며 특유의 업무 수완을 발휘할 때는 '탱크'로도 불렸다. 업계에선 그를 '엔진'으로도 칭한다. 현대건설 회생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30년 넘게 건설현장을 지켜온 최고의 베테랑이지만, 멈추지 않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돋보이는 위기관리능력 때문이다. 지난 1월, 31년간 몸담은 현대건설을 떠나 현대엔지니어링이란 새로운 출발선에 선 김 사장이 맨 처음 한 일은 회사 홈페이지를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엔지니어링은 건설의 원천이자 핵심산업이지만, 대다수 일반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야다. 때문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핵심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위기의 엔지니어링산업을 지식기반의 핵심분야로 키우기 위해선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엔지니어링은 미래 국가성장동력의 핵심입니다. 신(新)성장엔진으로서의 엔지니어링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한국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간산업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국내 건설엔지니어링이 세계화를 이루려면 우선 관련 업계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선 특화된 분야의 능력 배양은 물론, 관련 기술 전문화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개발, 새로운 기술습득과 축적된 경험, 자료의 데이터베이스(DB)화해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국내 엔지니어링 기술 수준은 실시설계나 시공설계는 선진국대비 70% 정도를 유지하며 국제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계획·타당성분석, 시스템 엔지니어링 부문 등 기초분야 기술수준은 여전히 선진국대비 60%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업체들의 해외진출은 석유·화학 플랜트 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기본설계와 책임기술자 등 핵심부분은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을 뿐아니라 대다수 엔지니어링 기업은 국내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회의하고 토론하는게 일이지요. 그 이후에야 메일이나 자료 등을 체크하고 나면 보통 자정쯤 퇴근을 합니다" 최우정 다음커머스 사장은 아무래도 일에 빠져사는 '워커홀릭'인 것 같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성격상 빠른 것을 좋아해서 일처리도 빨리 하려 하고, 결과도 빨리 나오기를 기대한다", "평범한 샐러리맨을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주말에는 주중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주로 '시체놀이'를 즐긴다" 는 말이 이어졌다. 성과지향의 기업인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멘트. 그러나 밝은 표정에 농담을 좋아하고, 직원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등 그야말로 소탈한 이미지가 겹쳐 부담스러운 일벌레의 느낌이 무겁게 와닿지는 않는다. 최 사장의 이력 또한 특이하다. 당초 사업보다는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 시작했던 일은 케이블TV 프로듀서였다. 하지만 독립미디어를 만들고 싶어서 PD직을 그만두고 문화전문콘텐츠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무료로 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