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총 1,446 건
'슈가버블'은 설탕과 올리브유로 만든 세제다. 기름에 잘 녹는 '친유기' 성분과 물에 잘 녹는 '친수기'로 구성된 '계면활성제'를 올리브유와 설탕을 조합해 대체했다. 계면활성제는 옷감이나 피부의 때를 제거해주는 세제의 핵심 성분으로 그동안 석유에서 추출해왔다.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물을 설탕과 올리브유라는 자연물로 대체한 '슈가버블'은 '무독성, 무자극, 무오염'을 자랑한다. 한국화학시험연구원의 급성 경구독성 시험결과 국제규격 분류표상 '무독, 무해' 수준으로 확인됐다. 경구독성 시험은 실험용 쥐 10마리 중 5마리가 죽을 때까지 먹은 '슈가버블'의 양으로 독성 정도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험 결과 '슈가버블'은 2만ppm으로 소금물 (3000ppm, '저독성')이나 에틸알콜(7000ppm, '무독성')보다 안전한 '무독, 무해' 판정을 받았다. 소재춘 그린케미칼 사장이 방송에 나갈 때마다 '슈가버블'을 몇 통이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이런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기회라도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면 만사지탄(晩時之歎)이지만, 성공한 사람에게는 좀처럼 얻기 힘든 천재일우(千載一遇)가 된다. 소재춘 그린케미칼 사장은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었다. 또 남들이 성공했다 말하는 지금도 또 다른 기회를 위해 달리고 있다. 소 사장이 그린케미칼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한 것은 불혹의 나이 40세가 되던 1998년에 일이다. 외환위기의 한파 속에서 안정적이라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포스코 기술연구소 연구원직을 접고 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머리 희끗한 선배들이 자기 생활도 없이 연구실적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나이가 됐을 때는 나와 내 가족을 좀 더 챙기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 사업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포스코에 던진 사직의 변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당시는 온 나라가 '벤처'를 외치던 시절이다. 이학 박사이자 잘 나가는 연구소의 연구원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한화증권 빌딩의 4층에는 숲이 있다.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도 지저귄다. 그 뿐이 아니다. 피아노도 있고, '사랑을 노래하는 화가' 헤몽페네(Raymond Peynet)의 아름다운 미술작품들도 있다. 각박한 이미지로 인식되기 쉬운 여의도 증권사 건물. 예상외로 한화증권 빌딩에서는 층층마다 아름다운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관점으로 한화증권의 변화를 모색하는 인물이 있다. 취임 2년차를 맞는 진수형 사장이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진 사장은 “과거의 정통적인 경쟁력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힘줘 말한다.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 ‘변화’와 ‘위기관리’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뚫는 것만이 살아 남는 비결이라는 주장이다. 미술작품은 진 사장이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과거 진 사장이 독특한 관점으로 추진한 사업들이 최근 들어 속속 빛을 발하고 있다. 투신업계에 몸 담던 시절, 그는 지금의 민간자본유치사
국내 금융시장의 '메카'로 불리는 여의도. 그 중심에 우뚝 솟은 한화증권 빌딩은 시원한 통유리로 여의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한화증권 빌딩이 '여의도'하면 떠오르는 몇 안되는 상징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 증권업계에서 한화증권의 위상은 빌딩에 비하면 초라했다. 제조업 그룹의 계열사여서 '순발력'이 떨어지고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그룹사 '이름값'도 못한다는 비아냥은 이제 옛 말이 됐다. 최근 1년간 한화증권은 시장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증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변화'를 꿈꾸며,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강소(强小)'증권사. 진수형 한화증권 사장 취임 1년 후 달라진 한화증권의 이미지다. ―2005년 11월 취임하신 후 정확이 1년이 지났습니다. 스스로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화증권의 '변화'에 역량을 쏟아부었고, 어느정도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관리만 잘한다'는 이미지, 주식중개업무(브로커리지)에
대한전문건설협회 제8대 신임회장에 취임한 박덕흠 회장(53)은 솔직하고 담백하면서도 신념과 의지가 굳은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충북 옥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지만, 더 큰 꿈을 위해 건설업에 진출, 업계에선 입지전적인 성공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의 부단한 노력과 일에 대한 열정은 정평이 나있다.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건설에 대한 전문지식을 위해 석사에 이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만학도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산업대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승마, 레이크보드, 스키, 골프 등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광'이다. 최근 3년여간 서울시협회장을 맡으며 운동을 통한 여가활동이 줄었지만, 여전히 건강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 깊다. 이런 박 회장이 오래 전부터 사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다. "사회봉사가 별거입니까. 그저 주위의 어려운
"건설산업과 업계 발전을 위해 투명과 화합 속에 힘있는 협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한 박덕흠 회장(원화건설 대표이사)은 3만5000여 회원사의 권익보호와 건설산업이 건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겸손한 자세로 봉사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특히 창립 21주년을 맞은 협회가 최근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협회내 투명성을 제고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업무체계를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협회내 '상시감사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회원사들의 각종 민원을 합리적이고 단기간내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영자문단'을 설치,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회원사간 화합과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끊기위해서도 '패거리 문화'의 잔존을 없애는데 솔선수범하고 큰 목소리 속에 소수의 의견이 충분히 담길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회장의 일문일답. - 협회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소감은. ▲저보다 더
LG파워콤이 초고속인터넷시장에 진출한 지 13개월 만에 1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업계 최단기간이다. 그것도 이미 1200만명 이상이 초고속인터넷을 쓰고 있어 더이상 여지가 없다는 세간의 불안감을 단번에 잠재운 성적이다. LG파워콤은 내년 상반기까지 150만 가입자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점이면 당기 손익분기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국 규모의 통신 소매사업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20개월 만에 손익분기점 달성을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일이다. 통신시장을 놀라게 한 LG파워콤의 성공비결은 '명품전략'이다. '소비자들은 속도와 품질이 보장되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상식을 관철한 것이다. 특히 포화상태에 다다른 시장일수록 그렇다는 게 LG파워콤의 생각이다. ―우선 100만 가입자 돌파를 축하드립니다. 통신업계 최단기간에 이런 실적을 올린 비결이 있다면. ▶초고속인터넷사업을 시작하기 전 다양한 서비스업체를 벤치마킹하면서 얻은 결론이 시장은 하이엔드 20%,
아쉬울 게 없었다. 장관까지 지냈고 대학원 원장에 법무법인과 다국적 기업의 고문 명함까지 가졌다. 족히 억대 연봉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모두 버렸다. 이환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64)의 얘기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장관 출신이 지방공무원 자리를 자청했다. "격이 안 맞다"며 고개를 갸우뚱한 이가 적지 않았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그의 행정고시 동기(6회)임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설교통부 장관 때 인천국제공항을 착공하면서 이미 인천을 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오래전부터 꿈꿔온 사업이다. 이를 위해 장관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국무총리보다 더 중요한 자리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외국인 투자유치가 국가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첩경이라는 판단에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성공한 다음에는 이를 전국으로 넓혀 '프리(Free) 코리
"세계 3대 정보기술(IT) 업체 한 곳이 아시아본부를 인천경제자유구역에 세울 겁니다." 최근 개청 3주년을 맞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이환균 청장은 2일 그동안 노력이 내년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현재까지 유치한 외자도 양해각서(MOU) 체결분까지 합하면 300억달러에 육박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이 청장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이 동북아 경제중심이자 우리나라의 성장축으로 자리잡으려면 보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새 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의 성과는. ▶본계약 기준으로 15건의 외자 유치가 성사됐습니다. 금액으로는 150억달러 정도 됩니다. 양해각서(MOU)를 맺은 것도 140억달러어치입니다. 세계 3대 IT업체의 하나가 아시아본부를 인천경제자유구역에 세울 예정입니다. 다른 세계적 기업들도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그동안 노력한 것이 내년부터 하나씩 싹을 틔울 겁니다.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같습
지난해 6월 남광토건은 국내 한 건축설계사로부터 아프리카 앙골라 컨벤션센터를 건립할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인 '소낭골'이 시공사를 찾는데 해외는 물론 국내 내로라하는 건설사들도 족히 2년은 걸린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 컨벤션센터를 10개월만에 지을 수 있느냐". 컨벤션센터 설계를 맡은 이 회사의 제안 내용이다. 앙골라는 2006년 4월 '아프리카 석유장관회의'를 이곳에서 열기로 해 사정이 다급했다. 이에 남광토건은 남은 공사기간을 역계산해 시공 계획표를 작성해 봤다. 이건식 남광토건 이사는 "사업의 성공 열쇠는 공기(공사기간) 단축이어서 시공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신속한 원자재 조달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무엇보다 협력업체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 최종 수주에 앞서 협력업체의 동의를 얻어낸 뒤 수주를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 프로젝트는 남광토건에게 큰 모험과 같은 사업이었다. 제 때 컨벤션센터를 완공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망신을 당할 뿐 아니라
"81년 신입사원 입사 때 남광토건은 시공능력 7위의 대표적 건설사였습니다. 이후 워크아웃을 비롯해 전(前) 대표의 횡령사고, 2차례 피인수를 거치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경영진과 임원진이 새로 출발하는 지금이 과도기입니다. 회사를 키워 현재의 47위 랭킹을 퇴임 뒤 7위로 다시 올려놓는 게 바람입니다. " 신입사원에서 출발해 24년만에 '샐러리맨의 꿈'을 이룬 남광토건 이동철 대표. 그는 인터뷰 첫머리에 선배들의 이름을 되뇌이며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내년 60주년을 맞는 남광토건은 국내 건설사의 산증인 같은 기업. 이에 비해 회사의 현주소는 그간의 부침으로 인해 뒷걸음질쳐왔다. 이 대표는 앙골라 등지의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주택명가를 재건해 2010년 30위권, 2012년 20권의 회사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긍극적인 목표는 입사 때의 명성을 되찾는 것. 이 대표를 만나 옛 명성 회복을 위한 구상과 경영전략 등을 들어봤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위기가 많았을 텐데요. ▶이
2005년 2월 한국기업데이터(KED) 초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배영식 사장은 1973년 성균관대 법대 재학시절 제13회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관료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경제기획원에서 물가정책국 조정과장을 거쳐 총무과장, 대외경제심의관을 역임했으며, 재정경제부에서는 공보관, 주영 재경관, 경제협력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재정경제원으로 합쳐질 당시 초대 공보관을 지내 언론계에도 친분이 많다. 특히 온화한 인품과 합리적인 업무기준으로 주위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지남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랫동안 교분을 나눠왔다는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배 사장의 업무능력뿐 아니라 인화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배 사장이 주영 대사관 재경관으로 있던 1997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당시 앞이 안보이는 위기상황에서 HSBC·바클레이즈·스탠다드차타드 등 영국계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수십억 달러의 단기외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