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LG전자 수퍼 디자이너 김영호·배세환·성재석
LG전자(112,000원 ▼1,000 -0.88%)에는 700여명에 가까운 디자인 인력이 있다. 이 중 최고의 영예인 '수퍼 디자이너'는 단 5명이다. 2006년말에 두명이 선정됐고 지난 19일에는 세명이 더 탄생했다. 김영호 책임연구원, 배세환 책임연구원, 성재석 책임연구원이다. 이들은 각각 휴대폰, 홈씨어터, 드럼세탁기 디자인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탁월한 능력만 있다고 '수퍼'라는 칭호를 받는건 아니다. 능력은 기본이다. 상사, 부하직원, 동료들의 다면 평가까지 받는다. 그래서 이 사람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검증받아야 한다. 세명의 수퍼 디자이너를 서울 역삼동 LG디자인센터에서 만났다.

수퍼 디자이너가 되고 달라진 점
'수퍼 디자이너'가 된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우선 신문을 보고 20년전 친구를 비롯해 수많은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머니가 두둑해 졌으니 술도 많이 샀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의사가 되겠다던 성재석 수퍼 디자이너의 큰 아이는 이번주부터 장래희망을 '디자이너'로 바꿀만큼 아빠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다. 월급 봉투가 두툼해진만큼 어깨도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성 수퍼(수퍼 디자이너가 된 후 호칭도 책임에서 수퍼로 변했다)는 "제일 달라진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그만큼 부담이 커졌다는 것. 배 수퍼도 기쁨이 컸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벌써부터 경영진, 연구소 내 동료, 후배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 같다.
김 수퍼는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은 기본이고 LG전자라는 회사에서 나를 세계적인 디자인 경쟁력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해 줬으니 이제 정말 세계 시장에서 이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어깨가 무거워졌다.
디자인 영감을 얻는 나만의 노하우

김 수퍼는 밀리언셀러 휴대폰을 두개나 디자인했고, 성 수퍼는 백색 위주이던 세탁기에 빨강과 파랑의 색을 입혔다. 배 수퍼는 사각형 밖에 없던 홈씨어터를 샴페인잔 모양으로 바꿨다. 획기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은 무엇일까.
김 수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조형물이나 패션, 조각 등을 많이 본다. 배우 김태희의 엉덩이춤 광고로 유명한 아이스크림폰은 조명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배 수퍼는 인테리어나 가구, 그리고 TV를 많이 본다. 아무래도 집에 거치하는 홈씨어터, 블루레이 디스크 등을 디자인하다 보니 집안과 잘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샴페인 홈씨어터는 화병 같은 유리공예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성 수퍼는 많이 놀러 다니고 쉬는 편이다. 쉴 때는 영화를 많이 본다. 한편의 영화를 스무번, 서른번도 본다. 그는 "SF 영화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되는 것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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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후발주자 한국, 왜 전자제품 디자인에는 강한가

한국은 디자인 자체를 배우기에 유럽이나 일본 등에 비해 좋지 않은 환경이다. 세명의 수퍼 디자이너도 모두 동의한다. "유럽 등은 어렸을 때부터 좋은 예술작품들을 많이 보고 자란다. 또 우리의 학생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그만큼 새로운 제품의 컨셉을 발굴하는 능력은 우리보다 뛰어나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실제로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는 LG전자 디자인센터 직원들로부터 컨셉에 대한 아이디어를 종종 얻는다.
그럼에도 LG전자를 비롯해 국내 전자업체들의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뭘까. 배 수퍼는 '전략적인 육성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LG나 삼성의 디자인 부서는 어느나라보다 크다. 그만큼 회사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성 수퍼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해외 학생들을 비교해 보면 손재주나 스케치 능력은 분명 우리가 더 좋다"고 평가했다. 제품 컨셉 발굴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컨셉을 제품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은 우리가 월등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게다가 전자제품은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테크놀러지(기술)가 뒷받침돼야 한다. LG전자,삼성전자(179,700원 ▼400 -0.22%)등의 전자 제품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구, 패션 등 생활 속의 디자인과 달리 전자제품 디자인에서는 우리가 해외에 뒤지지 않는 이유다.
나에게 디자인이란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역시나 답변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곧바로 '명장'다운 말들이 이어진다.
김 수퍼는 '운명적 여인'이라고 했다. 운명적인 여인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위해 뭘 해 줄 수 있을지 항상 머리속에 생각하듯이, 그 여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차 버리듯이, 뭘 해도 지치지가 않는 것 처럼, 디자인은 자신에게 그런 운명적인 여인이다.
배 수퍼에게는 '백지'다. 내가 생각한데로 그려나갈 수 있는 빈 종이다. 한참 디자인을 많이 할 때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한 장의 스케치라도 더 그리고 싶을 정도였다. 성 수퍼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인정하는게 내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니 성 수퍼에게 디자인은 행복이다. 세 명이 각각의 답변을 내 놨지만 공통점은 이들에게 '디자인은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 한마디
인터뷰에서 가장 식상한 질문이지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성 수퍼는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다기 보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고객에게 먼저 선택받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답했다. 시장조사 하러 매장을 둘러볼 때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선택하는 고객과 맞닥뜨렸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오디오나 비디오 제품을 주로 디자인했던 배 수퍼는 앞으로 TV 디자인도 맡게 됐다. TV는 LG전자가 올해부터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제품이다. 배 수퍼는 "LG TV가 세계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제품이 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수퍼는 "기술은 카피(모방)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디자인을 카피하는건 금방"이라며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디자인을 하나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