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와 환율은 동반자..."엔화대비 강세도 우려수준 아니다"
기자: "소니나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들 둘러 보시니 어떻던가요?"
이건희 전 회장: "겁은 안나요 나는, 겁은 안나도 신경은 써야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멀티미디어 가전 전시회 'CES 2010'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고전하고 있다'는 이른바 샌드위치론을 설파했던 이 전 회장에게 일본 기업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전 회장의 자신감을 반영하듯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지만 주가 영향이 크지 않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은 연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말 1164.5원이던 환율은 11일 1120원대로 떨어졌다. 불과 6일만에 40원 넘게 하락했다.
작년 같으면 환율이 이런 속도로 떨어지면 당장 수출주들에게 큰 타격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코스피지수도 상당한 조정을 거쳤을 법. 하지만 주가는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 1200원이 깨진 지난해 9월23일 코스피지수는 연중 최고점을 찍었고 환율이 30원 빠지는 불과 1주일여만에 130포인트 급락했다. 환율 하락은 당시 시장의 주도주였던 IT 등 수출주의 실적악화 우려로 이어졌고 결국 시장 자체가 가격조정을 거쳤다.
하지만 올해는 환율이 40원 넘게 하락하는 동안 코스피지수는 오히려 소폭 상승하며 1700선을 회복했다. 개별 수출주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말삼성전자(196,500원 ▲3,400 +1.76%)는 82만원에서 74만5000원으로 11.5% 하락했지만 올해 삼성전자는 오히려 상승한 상태다. 하이닉스반도체, LG디스플레이 등 대표적인 IT 수출주들도 마찬가지다.LG전자(107,100원 ▼2,300 -2.1%)는 소폭 하락했지만 작년에 비해 선전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환율의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분석했다. 환율 하락, 즉 원화 강세는 그만큼 한국 경제의 펀데멘탈이 양호하다는 의미이고 주가는 원화 강세 국면에서 상승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원화가 기조적인 약세로 전환될 때 강세장이 끝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원화 강세에 대해 "한국의 펀더멘탈이 좋다는 점과 위안화 평가 절상에 대비해 원화를 통해 베팅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학균 SK증권 투자전략팀장도 "2007년에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을 때 환율은 900원이었다"며 "전통적으로 자국 통화의 강세와 주가는 같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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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에는 환율 급락시에 주가가 하락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 팀장과 김 팀장 모두 '총수입=P(가격) × Q(수량)'라는 공식을 통해 설명했다. P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환율이라면 지난해의 경우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P가 떨어지면서 실적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지만 올해는 수요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면서 가격 하락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태동 팀장은 "미국에서는 개인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고 일반 기업은 수요가 100이라면 재고 때문에 110을 생산하고 있다"며 "중국도 춘절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미국과 중국이 동반해서 수요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일부에서 원화 강세가 달러 만이 아니라 엔화에 대해서도 급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에 심각한 훼손이 나타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김학균 팀장은 "엔화에 대한 원화 강세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2000년대 이후 1000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1200원대 초반인 지금이 결정적인 부담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이건희 전 회장의 발언도 이같은 의미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엔 환율이 1000원대에서도 일본과 경쟁했는데 1200원대에서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고유선 대우증권 연구원도 "최근 원/엔환율의 빠른 하락은 한국의 일본과의 경합관계에 있어 불리함을 예고하고 있지만 최근 한국의 대일본 수출에 대한 강도는 과거 1000원대 초중반 수준에서도 유지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일본에 크게 밀릴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