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황, 그 7년의 저주

[기고] 공황, 그 7년의 저주

홍성국 기자
2012.10.29 06:31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에 대해 미국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경기침체 정도로 판단했다. 그러나 소극적인 정책으로 경기하강 속도가 빨라지자 재차 뉴딜정책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5~6년이 지난 1930년대 중반 약간의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공황 발생 후 7년이 지나면서 세계경기는 다시 침체되었다. 두 번째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한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을 대공황의 타개책으로 이용했다.

일본은 1990년 버블이 붕괴되면서 대공황 때 미국과 같이 미시정책으로 대응했다. 불황 초기에 경기부양책의 규모는 10조~20조엔 규모로 당시 일본 GDP(국내총생산) 480조엔의 2~3%에 불과했다. 버블붕괴로 자산가치만 1500조엔 정도 사라진 상태에서 새발의 피였다.

미봉책이 이어지고 근본적인 해결이 지연되자 위기발생 후 7년이 지난 1997년 일본은 본격적인 공황에 빠진다. 대형금융사와 건설사 등의 부도가 발생했다. 서둘러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부실채권 정리에도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적자재정을 보전하기 위해 소비세를 인상하는 실책을 둔다. 버블붕괴 후 2000년까지 일본의 경기부양책은 모두 7차례 무려 200조엔의 자금이 투입되었다. 200조엔은 현재 한국 GDP의 2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불황의 그림자에 갇혀있다.

2008년 발생한 위기는 처음 '서브프라임사태'라는 명칭으로, 주택대출문제로 시작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지금은 '글로벌 위기'라는 용어로 불린다. 세계 전체 시스템을 모두 바꾸지 않는 한 탈출이 어렵다는 의미다.

반면 대부분 국가는 과거 미국과 일본의 공황시절과 비슷하게 대응한다. 정책 시행은 지연되고 강도는 미미하다. 보호무역주의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데 열을 올린다. 일부 국가는 민족주의 감정으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거나 심하게는 국가를 분할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방안을 추구하기도 한다.

미국과 일본이 버블붕괴 7년 후 본격적인 불황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장기성장의 관성 때문으로 판단된다. "과거에도 어려웠지만 잘 견뎌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했다. 또한 잘못된 정책대응과 사회 전체가 현실에 안주한 결과이기도 하다.

20년 전 누구나 사용한 소니, 샤프, 도시바, 파나소닉 등 일본의 4대 가전업체는 1990년대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3.3%로 떨어지더니 21세기 들어선 제로(0) 성장에 머물렀다. 이들의 모방자였던 삼성전자는 2005년 소니의 매출을 추월했다. 반면 자동차업체 토요다와 혼다는 적극적인 해외진출과 기술개발로 여전히 세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력의 차이였다.

인류역사상 현재와 같은 복합위기가 동시에 나타난 적은 없다.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국가에서 정부부채와 가계부채도 사상 최대치다. 세계화로 국가 간의 경쟁도 가장 심하다. 경찰국가였던 미국의 위상약화로 국가간 갈등을 조절하기 어렵게 되었고, 경제의 근간인 기축통화도 약화되었다. 글로벌 위기 발생 후 7년이 아니라 당장 이번 겨울나기도 만만치 않다.

2차대전 후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는 것이 사회적 목표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으면서 방향성을 상실하는 시점에 버블이 붕괴되자 지금까지 허우적대고 있다.

이제 한국도 치열한 고민으로 글로벌 위기 탈출과 장기적인 국가발전 모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올해 대선공약은 눈앞만 바라보고 있다. 7년의 저주가 발생한다면 불과 3년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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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민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최경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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