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암 환자는 기회도 없다?…"3명 중 1명 완치" 치료법 못 쓰는 이유

한국 암 환자는 기회도 없다?…"3명 중 1명 완치" 치료법 못 쓰는 이유

홍효진 기자, 박미주 기자
2025.05.16 09:00

[MT리포트] 신약 도입 후진국 한국 (下)

[편집자주] 한국에서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정작 한국에선 판매되지 않는다.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항암 신약도 한국엔 선진국과 일본 대비 상대적으로 늦게 들어온다. 한국 내 판매가 허가돼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더딘 편이다. 결국 신약을 기다리다 죽는 환자들마저 생겨난다. 혁신 신약의 국내 출시와 급여 적용이 늦는 이유와 해법을 알아본다.

"가격 후려쳐서 안 판다"…일본 '신약' 쏟아질 때 한국은 '그림의 떡'

한국 신약 접근성 현주소.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한국 신약 접근성 현주소.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새로운 신약이 출시돼도 국내 환자에겐 먼 나라 얘기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처음 출시된 뒤 1년 내 한국에 진입하는 신약 비율은 비급여 도입을 기준으로 봐도 단 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1년 내 신약 평균 도입률이 18%, 일본은 32%인 점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신약 도입' 속도 2년 이상 빠른 일본…한국, '낮은 약가'에 발목

허가 후 급여까지의 기간도 격차가 크다. KRPIA가 최근 10년(2012~2021년)간 미국·유럽·일본에 허가된 신약 460개의 도입 속도를 비교한 결과 한국에선 허가까지 평균 28개월, 급여까지는 평균 18개월로 총 46개월로 약 4년이 소요됐다. 반면 독일은 11개월, 일본은 17개월로 한국보다 2~3년가량 빠르게 신약이 도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환자는 세계 시장에 출시된 신약의 22%만을 급여로 치료받으며 혁신 신약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유승래 동덕여대 약학대학 교수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최근 6년(2017~2022년)간 국내 건보 재정 내 신약 관련 지출은 총약품비 대비 13.5%에 불과했다. 급여 참조국인 A8(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평균 38.0%, OECD 평균 33.9% 대비 절반 이하 수준이다.

신약 도입과 급여 등재가 더딘 이유로는 '낮은 약가'가 꼽힌다. 국내 시장에서 신약 가격은 대체약제 가격 수준에서 책정되는데, 기존 약가 자체가 대부분 낮고 제약사에겐 협상 기회가 부족해 약가를 높이기엔 한계가 있어서다. 대체약제가 있는 비열등 신약을 비롯해 대체약제 대비 우월성을 입증한 신약이더라도 대체약제 약가 수준이 낮으면 약가 인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에 다국적 제약사들 사이에선 "싸게 팔 바엔 한국엔 안 판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단 게 업계 중론이다.

국내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체약제가 출시된 지 오래되면 지속적인 사후 약가 관리로 약가가 인하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특허 만료 후 제네릭(복제약)이 출시되면 약가는 53.55%까지 인하될 수 있다. 국내에 출시된 신약 대부분은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90~100% 이하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 신약 가치 보장해야"…'이중약가제' '다중적응증 약가제' 대안으로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시장을 선점한 SK바이오팜(96,600원 ▼5,800 -5.66%)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명 엑스코프리)의 경우 아직 국내에선 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데, 한국에선 적정한 신약 가치를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혁신 신약 가치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대안으로 '이중약가제'가 꼽힌다. 이중약가제는 표시가격과 실제 거래가격 간 차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환급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국내 개발 신약에 대해 이중약가 계약이 가능하단 조항이 담긴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 일부 개정안을 고시했고, 건보공단은 이어 지난달 해당 절차 관련 제약업계 의견 수렴을 마쳤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혁신형 제약기업 △식약처 신속심사 허가 △국내 임상 수행 조건을 만족한 경우 기존 환급형 위험분담제(RSA) 대상 약제처럼 이중약가제가 적용된다.

건보공단 신약관리부 관계자는 "(차액 환급 시)담보 설정 및 환급 시기·고지 등 운영방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해 복지부에 전달했다"며 "향후 검토를 거쳐 운영방안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환급 시 이자, 담보, 조회되는 약가로 책정되는 부가가치세와 도매 마진 등을 고려하면 해외 진출 시 이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조회되는 약가가 높기 때문에 이를 참고한 수출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신약 적응증별로 약제 가치를 따져야 한단 의견도 있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혁신 신약 불평등성 해소 및 규제개선 정책 토론회'에서 "국내에서 다중적응증(약물 하나가 여러 적응증을 가짐)을 가진 항암제 32개 품목이 급여 대상"이라며 "임상적 가치가 다른 만큼 적응증별로 약제 가치가 다른 만큼, 이에 대한 가치인정을 통해 약가결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환자 3명 중 1명 완치" 희망 보고도…한국선 못 쓰는 이 치료법

제약사가 상이한 병용요법 급여 현황 사례.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제약사가 상이한 병용요법 급여 현황 사례.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두 개 이상의 약물을 함께 사용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병용요법은 항암 치료의 주요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 2017~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72개의 신약 임상 중 병용요법 비중은 30%에서 80%까지 급증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급여장벽에 미끄러져 비급여로 남아있는 병용요법이 많다. 세계 시장에서 혁신적 임상 효과가 입증돼도 한국 환자는 해당 선택지를 누릴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30년 표준치료도 바꿨는데…한국환자만 혜택 못받는 '병용요법'

요로상피암 최초의 항체-약물접합체(ADC)인 '파드셉'(성분명 엔포투맙베도틴)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의 병용요법(이하 파드셉 병용)은 '신약 불모지' 요로상피암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했단 평가를 받는다. 파드셉 병용은 30년간 표준으로 쓰인 항암요법 대비 약 2배 높은 무진행생존기간(PFS)과 전체생존기간(OS)을 달성했고, 환자 3명 중 1명에서 완치 가능성이 확인됐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파드셉 병용을 요로상피암 1차 치료의 유일한 선호요법으로 권고 중이며 유럽종양학회(ESMO)도 1차 표준치료로 파드셉 병용을 우선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한양행(86,000원 ▼3,400 -3.8%)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역시 존슨앤드존슨(J&J)의 이중항체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 병용요법을 통해 국산 항암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FDA 허가를 따냈다. 두 약물 병용은 경쟁 약물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대비 OS를 1년 이상 연장시키며 우월성을 입증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환자들은 이러한 치료 선택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단 점이다. 파드셉 병용도 국내에선 지난 2월 '2025년 제1차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통과하지 못해 비급여로 남아있다. 리브리반트도 비급여 상태다. 배경으로는 급여장벽이 꼽힌다. 현재 정부는 치료 효과가 높은 고가의 신약에 대해 신약 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관련 불확실성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하는 위험분담제(RSA)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병용요법 신약의 공급사가 다른 경우엔 위험분담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기밀유지 계약에 따라 서로 다른 기업 관련 경제성 평가나 재정영향 분석이 어렵고, 공정거래법상 제약사 간 협의가 불가능해 재정분담안 논의가 어려워서다.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가 낮단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ICER는 새 치료법이 기존 치료법보다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 효과를 얻는 데 추가로 드는 비용이 적절한지 평가하는 경제적 지표다. 2023년 기준 국내 항암제 ICER 임계값의 중앙값은 3999만원(2018년~2022년 평가 기준, 최젓값 2496만원·최댓값 4792만원)으로, 해외 대비 그 값이 낮아 신약 혁신성을 반영하기엔 부족하다. 두 약제를 함께 쓰는 병용요법은 단독요법 대비 약제 비용이 높아 기존의 국내 ICER 기준으로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병용요법 더 늘어나는데…"속도 뒤처진 한국, 유연한 평가체계 갖춰야"

지난 2월21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지난 2월21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5년 1월~2024년 12월·취하 제외) 국내에서 허가된 신약 항암제 중 병용요법은 희귀 신약을 제외하고 총 72건, 그 중 75%(54건)가 최근 5년 사이(2020년 이후) 허가된 것으로 확인돼 병용요법 도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급여 확대를 신청한 총 53건의 병용요법 중 제약사가 상이한 신약 간 병용요법 대부분은 비급여 상태였다. 제약사가 상이한 병용요법이 급여 적용을 받은 사례는 2021년 승인된 '비라토비(성분명 엔코라페닙)+얼비툭스(성분명 세툭시맙)' 1건에 불과하다.

해외에선 항암제 병용요법 가격 책정 등에 유연하게 접근 중이다. 캐나다는 제약사 간 자율적 조정과 기술 기반 협상으로 병용요법의 적정 가격을 공동 결정하도록 하는 한편, 가격 평가 방법을 개선하고 기존 치료제 가격을 재협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스위스는 각 제약사와 개별 협상을 통해 항암제 병용요법 약가를 책정하고, 임상적 이점을 반영해 최대 20%의 '혁신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다.

국내도 보건복지부가 최근 기존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던 항암제와 새로 개발된 비급여 항암 신약을 함께 쓸 경우 기존 약에 대한 건보 혜택이 지속되도록 급여기준을 보완했지만, 혁신신약 간 병용요법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한 제도 개선도 절실한 상황이다. 라선영 대한암학회 이사장(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은 "병용요법 접근성 확대를 추진한 해외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등장한 신약 병용요법의 혁신적 치료 효과는 ICER 기준만으로는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유연하고 포괄적인 평가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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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진 기자

안녕하세요. 바이오부 홍효진 기자입니다.

박미주 기자

보건복지부와 산하기관 보건정책, 제약업계 등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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