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누구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평생 농업 한 분야만 파고 든 전형적인 농업엘리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장관의 청년시절은 파란만장했다.
고추 농사를 크게 짓던 부모 밑에서 자란 청년 이동필의 인생은 고교 2학년 때 농촌활동을 온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장관은 "농민들이 못 사는 이유가 뭔지에 대해 의식화된 대학생들이 까까머리를 세뇌시켰다"고 웃으며 돌이켰다.
이 학생들이 다니던 영남대에 입학한 후에는 "농촌이 못사는 이유를 알려면 도시빈민을 알아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꽂혔다.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을 낮추는 게 필수적이었다. '저곡가-저임금'구조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농민들의 희생이 이뤄졌던 것.
이동필은 대구시내 한 성당에서 3년간 야학교사로 일하면서 이른바 '빈민활동'을 했다. 도시 최하층 빈민인 이른바 '넝마주이'들과 같이 한뎃잠을 자며 그들이 동냥해온 깡통밥을 나눠 먹는 생활이 그의 건강을 갉아먹었다.
결국 폐병으로까지 악화돼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현역병으로 입영하지 못했다. 이 장관은 "'에라 잘됐다. 농사나 짓자'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는데 부모님께 쫓겨났다"고 말했다.
농촌빈곤 문제에 의식화된 농촌청년에서 연구원을 거쳐 농림부 장관에 이른 그는 "사람이 어떤 뜻을 갖고 어떻게 노력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갈 수록 절실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쌀 관세화 문제에 대해서는 "20년 이상 미뤄온 과제인 만큼 새벽에 잠을 깰 만큼 걱정이 된다"며 "그간 고민하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심정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틈 날 때마다 귀농 계획을 밝혀왔다.
"농촌이 왜 못 사는지 연구하겠다며 집을 나서 평생을 연구소에만 있었다"고 지난 날을 돌이킨 그는 "부족했지만, 변혁기 전환의 한국농업의 갈 길을 밝히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남은 꿈을 이야기했다.
이 장관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영남대 축산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서 농업경제학 석사를, 미주리대서 박사 학위를 땄다. 1980년 한국농총경제연구원에 입사해 1998~2000년까지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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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연구원에 돌아와 정보관리실장, 기획관리실장, 농촌발전연구센터장,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 등을 거쳤다. 2006년 농식품부 규제심사위원장을 지냈고 2008년엔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농촌희망찾기 현장포럼 대표를 거쳐 2011년 제12대 농촌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지난해 장관에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