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칼든 강도에게 지갑을 주면 뇌물인가"

[기자수첩]"칼든 강도에게 지갑을 주면 뇌물인가"

민동훈 기자
2016.11.09 04:30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정부의 역점 과제인 '문화융성'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와 차은택씨가 문화융성사업에 관여하며 사익을 취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덕분에 이 사업의 한 축을 맞고 있던 CJ그룹은 졸지에 '최순실 일당'의 공범으로 몰렸다. 박근혜 정부출범 초기에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구명을 위해 K-컬처밸리 등 각종 정부사업에 CJ가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안을 되짚어 보면 CJ는 오히려 피해자다. 실제로 청와대가 CJ그룹 오너 일가인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직접 요구한 녹취록까지 공개됐다. 재판을 받으며 악화된 희귀유전병으로 생사를 오가는 이 회장을 볼모로 최순실 일당이 한 몫 챙기려 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CJ그룹이 제작한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이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그럴싸한 이유도 나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익명의 제보도 쏟아진다. 하지만 이 사안의 핵심은 한 개인의 '보복'이나 '길들이기'가 아닌 비선실세의 '이권 챙기기'다.

당시 CJ는 건강이 안 좋은 오너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오너의 누나(이미경 부회장)와 외삼촌(손경식 회장)만 몰아내면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와 마찬가지다. 하이에나 앞에 던져진, '다리 다친 임팔라' 신세였다.

CJ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래가 아닌 당장의 생존이 절실해서다. 다리 한쪽을 내주더라도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이 상식적이다. 마침 문화사업은 CJ그룹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잘해 온 영역이다. 최순실 일당에게 이권의 일부를 내주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해주고 이 회장의 사면을 얻어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뇌물이라고도 한다. 공범, 부역자 등의 표현 까지 난무한다. 이는 '그냥 조용히 죽지 왜 살아났느냐'고 꾸짖는 것과 다름 아니다. 칼로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에게 지갑을 내준 것이 뇌물인가.

문화융성사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콘텐츠다. 최근 전세계적인 한류 열기는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다. 그 중심에선 CJ그룹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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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훈 기자

미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 가에 달려 있다. 머니투데이 정치부 더300에서 야당 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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